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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Sep 08. 2022

태풍 힌남노의 참변 이후...

 태풍 힌남노가 전국을 휩쓸기 전날, 각 방송마다 태풍의 위력에 대해 과장되리만큼 경고했다. 많은 사람은 강한 불안에 휩싸였고 저마다 재택근무, 휴업, 원격수업 등등을 선택하며 천재지변이 무사히 지나가기만을 고대했다.


 태풍이 온다는 당일 아침, 이상하리만큼 이곳의 하늘은 맑았고, 햇살은 눈부셨다. 최근 이렇게 아름다운 아침을 맞이한 것이 오랜만일 만큼 세상은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온갖 호들갑을 떨며 태풍을 대비한 것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누가 알았을까? 그 아름다운 평화 뒤에 가슴 아픈 비극이 숨겨져 있었음을.


 연일 방송에서 포항, 울산, 경북 지역의 태풍 사고 소식을 전하고 있다. 특히 포항의 한 아파트의 주차장에서 발생한 인명사고는 접하면 접할수록 마음이 너무 아프다.

 

 강한 위력을 가진 태풍이 몰려오는 아침,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지하 주차장의 침수를 우려해 새벽 6시 30분, ‘차를 빼라’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많은 사람은 그 방송을 듣고 허겁지겁 지하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안타깝게도 그 시각 태풍으로 인한 강한 폭우와 하천의 범람이 겹쳐 많은 진흙탕 물이 지하로 밀려들었다. 결국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9명 중 2명은 무사히 구조되었고 7명은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다.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이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오늘 아침, 기사들을 하나하나 정독하며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뜻밖의 변을 당한 부부, 형의 차를 옮기려던 동생, 홀로 주차하러 간 엄마를 도우려 했던 아들 등등, 태풍이 오던 그 순간, 生과 死가 바뀐 안타까운 사연들이 신문의 활자 속에서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특히 15세 사춘기 아들의 사연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너무 아프다.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이 사연은 정말 눈물 없이는 읽을 수가 없다.

 

한창 잠도 많고 투정도 많을 나이의 소년, 아들은 새벽 일찍 홀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간 엄마가 걱정되어 뒤따라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어두컴컴한 지하 주차장 안, 그는 급격히 불어난 빗물에 차 문을 열지 못하고 갇힌 엄마를 발견하고는 운전석의 문을 열어 탈출을 도왔다. 하지만 이미 빗물을 가슴 위까지 들이찬 상황, 이미 체력적으로 벗어나기 힘들다고 판단한 엄마는 “너만이라도 살아야 한다”라고 아들을 설득하고는 먼저 내보냈다. 이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들은 “엄마, 사랑해요.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힘들게 엄마 곁을 떠났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엄마는 천장의 봉에 매달려 기적적으로 구조되었고, 아들은 지하 주차장의 계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구조되었다.


 그 짧은 선택의 순간에 모자는 얼마나 아픈 갈등과 고통을 겪었을까? 차마 상상할 수조차 없는 비통한 슬픔이다. 천재지변이 갈라놓은 죽음과 생사는 이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로 남았다.


 사람들은 이 아픈 사연을 두고 ‘천재(天災)’니, ‘인재(人災)’니 말이 많다. 어떤 이는 관리사무소 측에서 그때 주차 방송을 내 보내지 않았으며 이런 참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는 태풍, 홍수, 폭우에 대비한 지하 주차장 대비에 대한 매뉴얼이 없는 탓이라며 소리친다. 또 어떤 이는 기후 온난화로 인한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을 일,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어쩌면 ‘에게, 기상청이 또 과장보도했다’라며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었을 일이 여러 선택이 모여 끔찍한 비극이 되었다. 미리 지하 주차장 정비를 했다면, 미리 지하 주차장에 물막이벽이라도 설치했다면, 태풍이 오기 전에 미리 차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면, ‘입주민들의 욕 들을 각오’를 하고 안내 방송을 하지 않았다면, 미리 입주민들의 지하 주차장 출입을 막았다면…. 여러 가지 황금 같은 선택의 순간들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린다.


 아마도 이런 선택지를 알았더라도 참변을 일어나기 전에는 미리 앞장서 준비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참 불쌍하게도 항상 일이 일어난 뒤에야 다시 사건을 살펴본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가 익숙하지, ‘소 잃지 않고 외양간’을 고치면 뭇사람들에게 돌팔매 맞기 십상이다. 태풍 힌남노가 온 후 평화로운 아침을 보며 ‘기상청의 과장보도’라고 속으로 읊조렸던 나처럼 말이다. 앞으로는 기상청에서 과장보도를 해도 좋으니 철저히 대비해서 이와 같은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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