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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Oct 21. 2022

이해심 많은 엄마는 개뿔...

 혈기가 왕성한 중고등 남자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저도 모르게 감정이 불쑥 올라올 때가 있다. 솔직히 1년 365년 항상 ‘천사’처럼 착하고 다정한 엄마가 되는 일이 가능하기는 할까? 그래도 나름 우리 아이들과는 대화도 잘 통하고 감정 통제를 잘하며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오늘 아침과 같은 일이 닿치면 저도 모르게 ‘불량 엄마’의 기질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한다.


 첫째의 모든 중간고사 시험이 끝나고 현장학습을 가기 전날, 큰 애는 어젯밤부터 침대에 머리를 ‘딱’ 붙인 채 놀기 시작했다. 뭘 하며 노는지는 몰라도 중학생 동생에게 이런저런 심부름을 시켜대는 것을 보면 몸을 못 움직일 만큼 엄청나게 신난 모양이었다. 그래, 그래, 그동안 고생했느니 열심히 놀거라. 그런 아들을 잠시 바라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현장학습의 약속 장소로 보내기 위해 큰 애를 깨우자마자, 아들의 첫마디는 “아, 큰일 났다. 이거 안 했는데…. 왜 안 깨우셨어요?”였다.

왜 안 깨웠냐고?, 사실 아들이 깨워달라는 소리는 어젯밤 내내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그 녀석은 어제 ‘공부’의 ‘공’자도 꺼내지 말라고 선언하고는 열심히 놀았고, 나는 그 모습만을 졸린 눈으로 바라보다 잠들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안 깨웠냐고?’ 갑자기 이런저런 논리로 따지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았지만, 꾹 참고, “어, 그래? 그랬구나. 지금은 얼른 챙겨라. 시간이 얼마 없으니.” 아들은 욕실로 향하며 가는 도중에도, 아침을 허겁지겁 먹는 시간에도, 집을 나서는 시간에도 “아, 큰일 났다. 왜 안 깨우셨어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 말을 한 열 번쯤 반복하자, 참지 못해, ‘아주 상냥한 목소리’(내 생각에는)로, “깨워달라고 했니? 어제 엄마가 너보다 먼저 잠들었잖아. 그때 이야기를 안 한 것 같은데….”라고 소심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들은 여전히 “큰일 났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급하게 집을 나섰다.


 큰 애가 집을 나서자마자 참았던 감정을 한 문장으로 농축시키며 외쳤다. “저놈의 자식이!”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들어야 하는 큰 애는 사라지고 외로운 분노의 외침만이 집 안을 윙윙 맴돌았다.

  

  ‘저 녀석은 엄마가 무슨 알람 시계인 줄 아나?’,

  ‘할 일이 있으면 미리미리 지가 챙겼어야지.’,

  ‘어제 분명 약속 장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니 미리 경고했는데.’,

  

 미처 아들에게 소리치지 못한 속내들이 그제야 입속에서, 머릿속에서 꿍얼거리며 터져 나왔다. 아들들이 어릴 때는 ‘엄한 엄마’, 좀 컸을 때는 이해해 주는 ‘대화하는 엄마’가 나의 다짐이었다. 예전부터 아이들이 십 대가 되면 부모와 대화를 끊는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 나름의 방비책이었다.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관련 책도 자주 읽었고 부모교육, 비폭력 대화 교육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면 굳건한 그 다짐이 조금씩 무너진다.


 시간이 날 때면 대한민국 육아 전문가라 불리는 오은영 박사의 프로그램을 종종 본다. 사실 그분은 우리나라의 아이들과 부부들의 모든 갈등을 해결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예전에 그분 역시 무수한 언론인들에게서 ‘자녀는 어떻게 키웠는지’라는 질문을 받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질문의 의도는 ‘남의 자식은 잘 키워도 자기 자식은 잘 못 키운다’라는 의구심일 수 있고, 그렇게 훌륭한 엄마 밑에 어떤 자식으로 성장했을지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일 수도 있다. 그분이 그 당시에 어떤 대답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지 상상해 본다. 신경질을 부리는 아이들 앞에서 단호하면서 이해심 많은 얼굴로, “안 돼!”라고 외치거나, “그랬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모습을 말이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니 이런저런 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마음이 추스를 일이 많다. 생각하기 싫지만 생각해야 할 이야기도 있고, 다른 일로 정신이 없지만, 아이들의 눈을 맞추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도 있다. 화가 나도 우선 참고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들어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오은영 박사’을 본보기 삼아 흉내를 내왔는데, 사실 난 그런 깜냥은 아니었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친정어머니가 자식들의 통화를 빨리 끊으려고 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라는 말처럼, 사춘기 시절, 우리 세 자매는 돌아가면서 엄마 마음을 무지하게 힘들게 했다. ‘왜 안 깨웠어요?’라는 말, 수십 번, 수백 번도 더 해댔던 것 같다. 그때는 당연히 그래도 되는 줄 알았으니까.


 당연히 그래도 되는 일은 없다. 아무리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말이다. 아이들의 투정을 보니 사춘기 시절의 내 모습이 투영된다. 요 아들 녀석들이, 매번 이해해 주고 마음을 헤아려 주니까 엄마가 오은영 박사인 줄 아나, 엄마도 성질 많거든. 요 녀석, 오기만 해 봐라.

가족들이 나간 빈자리, 아이들이 자기 방 안에서 허물처럼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정리하며 혼자 씩씩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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