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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푼 소망들이 올라가는 계묘년 새해 아침

by 하늘진주

계묘년 새해다. 1월 1일 첫날, 아침의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며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새해에 읽을 만한 인터넷 칼럼들을 뒤적이고 있다. 작년만 해도 일출이 잘 보이는 명소를 찾아 대기해서 온몸을 동동거리며 아침 해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을 테지만, 올해는 마음을 바꿨다. 유난히 잠이 많은 사춘기 아들 녀석들을 깨워 데리고 나가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따뜻한 솜이불속 아들들이 꿈속에서 새해 일출을 잘 맞이하기를 바라며 나는 저 멀리 보이는 베란다 창문을 바라본다. 어두컴컴했던 밖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을 보니 분명히 해는 뜬 듯한데, 주변의 아파트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에이, 내 집에서 아침 해도 온전히 못 보나?’라는 심술궂은 감정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던 찰나, 재빨리 마음을 고쳐먹는다. 올해, 2023년은 사회에 대한 삐딱한 생각은 좀 자제하고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으로 시작하련다.


새해 아침에는 사회 속 사람들의 복잡 미묘한 이야기들보다 자연과 관련된 추상적인 칼럼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 마음을 품고 30분이 넘게 인터넷 칼럼들을 뒤적이는데 도무지 마음에 드는 글들이 보이지 않는다. 사회의 부조리를 비꼬고, 부의 불평등을 비판하고, 참여와 연대의 중요성을 토로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평소라면 그런 글들을 무척 흡족해하며 게걸스레 파고들겠지만, 새해 아침부터는 읽고 싶지 않다. 2022년의 잠에서 깨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순백의 2023년의 아침, 나의 첫해는 자연을 노래하고 마음을 달래는 감성으로 시작하고 싶다. 연말과 연초는 사회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이야기보다 고요한 자연의 이야기가 유난히 그립다.


쉴 새 없이 뒤적거린 뒤에 맘에 드는 칼럼 하나를 발견했다. 신예슬 작가가 경향 신문에 기재한 <종소리>라는 글을 한편 발견했다. 이 칼럼은 작가가 새해를 맞이하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느낀 감정을 쓴 글이다. 그녀는 소리에 민감한 음악평론가이다. 작가는 <작곡가 강성희와의 대화>에서 “종이 울리면 낮은 소리는 내려가고, 높은 소리는 위로 올라가서 만나거든요. (...) 계속 사라져 가는 거지, 없어지지를 않는다는 거죠”라는 강성희 작가의 글을 인용하며 소리의 연속성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게 되었더라도 소리는 끝끝내 존재할 것이라는 그의 이야기는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았다’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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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시작점부터 서른세 번 울려 퍼지는 그 종소리를 들으며, 우선 그해에 이루고 싶은 것들을 마음속으로 되뇐다. 대체로 나의 새해 소망은 ‘건강하게 해 주세요’ ‘운동을 꾸준히 하게 해 주세요’ ‘집 갖게 해 주세요’처럼 단순하고도 야망 찬 것이 대부분이라, 대체로 타종이 끝나기 전에 소망 리스트가 끝난다. 그러고 나면 그저 종소리를 생경하게 듣는 시간이 찾아온다. (중략)


나는 그 소리를 한 해라는 긴 시간을 구획하는 거대한 울림이자, 많은 이들의 소망과 염원을 모아주는 뜻깊은 소리로 받아들인다. (중략)


새해의 결심은 늘 작심삼일로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한 해의 끝자락에서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새해 첫날 단 몇 분 동안 되뇐 말들일 뿐이지만 어떤 소망은 지난 한 해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했고, 작심삼일이 몇 차례 반복되며 아주 희미한 습관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종소리에 관해 이야기하며 소리는 조금씩 사라져 갈지언정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던 강석희의 말처럼, 종소리를 들으며 품었던 소망도 서서히 흐려질 뿐,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신예슬 음악평론가/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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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계묘년 아침이 밝았다. 지금쯤 많은 사람이 일출을 바라보며 새해 소원을 빌고 있을 것이다. 건강을 빌고 부와 안정을 소원하고 다가올 큰일을 생각하며 결심을 다진다. 뜨고 지는 일상적인 해의 움직임, 별다를 게 없는 아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을 높이 세우는 것만으로도 오늘 아침은 새롭게 느껴진다. 둥근 해의 움직임에 따라 해묵은 어제의 잡념들은 내려가고 부푼 새해의 소망들은 올라간다.


가족들의 건강, 행운, 운동, 다이어트 등등 이제는 굳이 힘들게 떠올리지 않아도 자동으로 자리매김하는 소망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매년 세웠고, 꾸준히 실패했던 소원들이다. 올해도 역시 자꾸만 작심삼일을 반복하며 빈약한 내 의지를 원망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또 어떠냐? 신예슬 작가의 말처럼, 흐릿해진 내 소망들, 결심들은 굴복하지 않고 내년을 또 기다릴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꿈들은 이루어진다. 진정으로 원하고 바란다면 말이다.


비록 높은 아파트 건물들에 가려 둥근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계묘년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어딘가 섭섭했던 작년이 가고 또 다른 새해이다. 작년보다는 좀 더 나은 내가 되기를 바라며 올해의 아침을 출발해 본다. 2023년은 어떤 일을 하고 싶을까? 그동안 읽어왔던 복잡한 사람들의 이야기 숲에서 벗어나 환하게 밝아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올해 원하는 일들을 구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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