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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밀도 있게' 사는 법을 찾으며

쇠귀 신영복과 배우 배두나

by 하늘진주

요즘 <신영복 평전>을 읽고 있다. 몇 주 뒤면 시작할 숭례문학당의 독서토론 고급과정의 책 중의 하나이다. 이 과정의 책들이 어렵고 선택 논제 내기가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 미리 책이라도 읽어 보고자 책 읽기를 시작한 참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책 읽기의 진도가 안 나가는지 모르겠다. 또렷한 눈으로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도 이 책의 페이지만 넘기면 자꾸만 눈이 감기기 일쑤다. 특히 책의 2부 <쇠귀의 사상> 편이 나를 힘들게 한다. 가장 논제를 내기가 손쉬운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 경제’, ‘자본주의’, ‘헤게모니’ 등등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게슴츠레 눈이 감기고 있다. 아뿔싸, 또 한 페이지도 못 넘기고 잠이 들었다. (잠깐, 노파심에 밝혀두지만, ‘지루하다’는 감상은 나의 주관적인 평가이다. 사람들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음을 명백히 밝혀 두는 바이다.)


‘쇠귀’, 이 명칭은 신영복 선생을 부르는 아칭이다. 이 책을 쓴 저자, 최영묵, 김창남은 선생을 ‘평전의 객관성을 고려하면 신영복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맞겠지만’, 그들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감정 때문에 고심 끝에 ‘쇠귀’라 부르겠다고 책의 앞머리에 밝히고 있다.


쇠귀 신영복은 1970년대 무력 적화 통일을 꾀했다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끌려가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헌신 전인 노력으로 다시 장기 무기수로 20년 감옥생활을 했다. 교도소에서 나온 후 그는 그의 생각과 사상을 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신영복 선생이 죽고 난 후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평전을 쓴 것에는 바로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쇠귀가 옥중에서 썼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여전히 새로운 세대의 독자들을 양성시키고 있다. 극한의 상황에 빠져 절망적으로 삶의 의지를 놓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던 것은 무엇일까?


2부 사상 편에서 그의 마음을 한 대목 발견했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쇠귀의 사상과 생각 편에서 유일하게 발견한 청량한 물줄기다. 이 책에서는 신영복 선생이 무기징역이 확정되면서 본격적인 ‘사색’과 ‘성찰’이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사람은 한 그루의 나무다”라는 말로 본인의 내부에 한 그루의 나무를 키우려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던져진 곳의 바람과 물과 토양 속에서 자신을 키워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무기징역을 시작한다’(p.227) 했다. 선생은 평생 사회로 나갈 수 없는 절망 속에서 매일매일 삶의 의미를 찾으며 자신만의 나무를 키우려고 노력했다. 그는 ‘매일매일 자기가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면 버티기가 어렵다’(p.228)고 밝히며 매일 살아야 이유를 찾았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모습을 보니 3년 전에 <유퀴즈 온 더 블록>에 나왔단 배우 배두나의 한 마디가 생각난다. “왜 그렇게 쉬지 않고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하느냐?”라는 질문에 그녀는 “대중들이 자신의 연기를 언제 싫어할지 모르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러면 대중들이 연기를 싫어하면 어떻게 할 거냐?”라고 짓궂게 질문을 던지자, 배두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기 위해 인생을 더 밀도 있게 살려고 한다.”라고.


쇠귀 신영복과 배우 배두나의 환경을 너무도 다르지만 그들이 삶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결을 같이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삶, 가회를 허술하게 여기지 않고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시간, 나는 내 인생을 얼마나 ‘밀도 있게’ 살고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삶은 지극히 평범하다. 가족들을 돌보고 따라다니며 잔소리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하고 쉬고...... 이런 삶에서 ‘밀도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배두나처럼 유명한 배우도 아니고 신영복 선생처럼 명망 있는 사상가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한의 상황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애썼던 신영복 선생을 생각하니, ‘평범’이라는 안전한 변명으로 ‘밀도’ 있는 삶을 거부하는 것을 좀 꺼림칙하다. 매일 삶의 의미를 찾고 보람 있게 내 시간을 보내면, 그것으로 ‘밀도 있는 삶’은 완성이 되는 걸까? 나 역시도 아름다운 한 그루의 나무를 멋지게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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