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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y 15. 2023

무지 속의 동심

 이제는 세상의 모든 뉴스를 내 손바닥 크기의 작은 기계로 볼 수 있다. 부부사이의 미묘하고 복잡한 이혼 소식도, 꼭꼭 숨겨두어 절대로 들키지 않을 줄 알았던 유명인의 학교폭력 이야기도, 지구 반대편에 일어난 일도 마음만 먹으면 다 알아낼 수 있다. ‘아는 것이 곧 힘’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살다 보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알려줘야 할지 무척 헷갈린다. 최신기기와 정보에 능숙한 ‘요즘’ 아이들이니 숨겨봐야 소용없다고 여기면서도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동심의 마지막 보루라 믿던 ‘산타 할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그 많은 노력을 했던 것은 비단 아이들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아이들은 순수해야만 한다’고 믿는 ‘어른의 마음’ 때문이다.


 사실 어렸을 때는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항상 평화롭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믿음에는 어른들의 엄청난 노력이 뒷받침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항상 저녁 9시 뉴스 시그널이 들리면 무조건 우리 방의 불을 껐다. 저녁 뉴스와 신문은 무조건 어른들의 몫이었다. 그 당시 세상의 소식들은 모두 차단되어 있었다. 독재정권에서 민주정권으로 바뀌는 역사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거리의 풍경은 온갖 시위와 매운 최루탄 가스로 시끄러웠지만, 집안의 정경은 평화로운 침묵이었다. 그저 거센 폭풍우 속에서 몸을 납작 엎드린 개구리 집안처럼 말이다.


 부모님이 힘겹게 지켜주신 어린 시절의 내 동심은 상상 속의 인물들과 언제나 함께 했다. 얼마 없는 인형들, 볼펜, 연필들을 한 줄로 죽 늘어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꾸몄다. 학교 도서관에서 읽었던 ‘세계명작동화’ 속 이름들을 그대로 가져와 인형들에게 ‘크리스티나’, ‘엘리자베스’, ‘에드워드’ 등등의 외국 이름을 붙여 생명을 불어넣었다. 대부분의 그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외국의 왕국에 사는 공주, 왕자들이었고 같이 동화 속의 나라로 여행했다. 백설 공주의 모험에 동참해서 마녀의 속임수를 막기도 하고 너무도 불쌍한 인어공주의 결말에 반발하며 새롭게 결말을 만들기도 했다. ‘게으른 자들의 천국’에 들어가 우유가 흐르는 강에서 우유를 마시고 빵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 속의 키티도 또 다른 상상의 소재였다. 그 이름을 모방해서 나만의 ‘티키’라는 친구를 만들었다. 안네 프랑크처럼 밀실에 갇히지 않았지만, 2가지 장치로 ‘나만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마음을 단정히 하며 티키를 7번’ 불렀고 ‘일기장’을 조심스레 펼치면 안네 프랑크처럼 나만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왔다. 갑작스레 너무 우울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만의 공상의 왕국 속에서 일기를 쓰며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다.


 한창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을 읽을 때는 길 위의 돌덩이 하나, 나뭇가지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 숨겨두고 싶은 나만의 보물, 동전을 꼭 쥐고서 나만의 보물 지도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 쪽의 구덩이를 하나 팠다. 얼마 안 되는 내 용돈, 예쁘고 반짝이는 돌들 등, 자잘한 나만의 보물들을 모두 숨겨 놓고 조심스레 흙을 덮었다. 그리고 알록달록한 색의 돌 몇 개, 이상한 모양의 나뭇가지를 주어다 놓아 나만의 보물지도 표시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린 비 덕분에 표시해 둔 보물지도의 모든 자국들이 사라져 영원히 내 보물들을 찾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시계를 굴리며 바쁘게 지나가는 토끼는 만날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의 공상과 상상을 가득한 시기였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현실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상상 속에 푹 빠져있었다. 그렇게 그 당시 자식들을 험난한 시기에서 지키고 싶었던 어른들의 선택은 ‘침묵과 숨김’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아직 어린 자식들에게 세상의 어두운 현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비록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알리며 풍족한 선물의 기쁨을 주지 않았지만,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챙겼고, 어린 시절의 평화를 위해 세상일을 차단했다.


 그렇게 지켜진 아름다웠던 나의 동심은 당연히 나이가 들며 너무도 처참하게 깨졌다. 서울 88 올림픽으로 평화롭고 아름답다고 여겼던 우리나라는 북한과의 사이에 있는 위험한 분단국가였고, 독재정권의 마지막 몸부림 속에서 세상은 정말 시끄러웠다. 나중에서야 때마다 학교에서 그렸던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포스터와 표어의 의미를 알았고, 온 거리를 하얗게 뒤덮었던 매운 최루탄 가스가 감돌던 거리에서 뭉쳐 다녔던 대학생 언니 오빠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도 고민이다. 아이들에게 세상의 어두운 면을 알려주어 모든 일을 알려주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아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모르는 것이 좋을지 헷갈린다. 곱게 지켜온 동심이 왕창 깨질 때의 충격은 컸지만, 상상 속의 인물들과 함께 공상하며 지내던 시절은 행복했다. 다시 어린이가 된다면 어떤 세상을 꿈꿀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행복한 공상을 꿈꾸고 싶다. 세상은 만만치가 않고 힘들다. 하지만 이미 모든 길의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슬픈 결론보다는 어린 시절만큼은 무지 속에서 꿈꾸고 싶다. 그 속에서 간직한 망각이 더 달콤하고 행복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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