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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un 02. 2023

도망갈 곳이 없다

“2023년 5월 31일 오전 6시 32분, 서울 전역에 전쟁 대피 문자”가 발송되었다.


 이른 새벽 직접 문자를 받은 서울 시민들은 황당함과 충격에 휩싸였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각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인터넷 서버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접속으로 과부하에 걸렸고, 몇 분 동안 서울 전역은 전쟁의 공포로 마비되었다. 그런 문자마저도 받지 못한 지방 시민들이 평화롭게 아침 일상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뒤늦게 인터넷 뉴스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놀람과 동시에 여러 가지 마음들이 밀려왔다. 불과 버스로 30분 거리, 난데없는 한 통의 문자는 안 그래도 먼 서울과 지방의 심리적 거리를 더욱 벌려놓았다.


 첫 번째 감정은 복잡함이다. ‘어떻게 이런 문자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보낼 수 있을까?’라는 마음과 더불어 북한의 움직임을 새벽부터 긴밀하게 관찰하다 허겁지겁 위기 경보를 내린 공무원들의 민첩함을 칭찬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철통’같이 튼튼하다고 믿었던 우리나라의 전쟁관리 시스템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싶은 실망감과 분단국가의 현실에 대한 걱정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두 번째 감정은 서러움이다. 서울 시민들이 전쟁 대피 문자로 충격을 받는 동안, 겨우 버스로 30~40분 거리의 지역에 사는 나는 한가롭게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편아이를 깨우고 다음 날 있을 고등학생들을 위한 6월 모의고사를 걱정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만일 이 문자가 오발송 된 문자가 아니라 진짜 문자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서울 시민들이 전쟁을 피해 대피소를 찾아다니는 동안, 서울 시민이 아닌 나는 어떤 일인지도 모르는 채 참변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1950년 6.25 전쟁 당시, 정부가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외치며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 도망가던 아픈 역사가 갑작스레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흔히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도망갈 곳이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6.25 전쟁 당시에는 짐을 챙겨 무조건 남쪽으로 도망갈 수 있었지만,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요즘은 도망칠 곳이 없다. 4개월 전, 북한의 도발이 지속적으로 보도되던 당시,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의 크리스찬 데이비스 서울지국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간) ‘한반도 전쟁 준비의 교훈’(Lessons in preparing for war on the Korean peninsula)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남과 북의 화력은 매우 크고, 이에 비해 그들의 거리는 너무 좁아서 (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모두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2023년 1월 18일, 중앙일보, 이보람 기자)


 한마디로 도망칠 곳이 없다. 그동안 발달한 전쟁무기의 뛰어난 성능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한반도는 넘쳐나는 차들과 인파로 포화상태다. 명절이나 공휴일에 다른 지역으로 나들이를 가본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굳이 전쟁이 아니더라도 차가 갈 수 있는 모든 도로들은 주차장이 된 지 오래다. 차를 끌고 도로로 나온 사이에 날아오는 폭탄들을 맞아 다 죽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영국 일간지의 지국장 데이비스의 주장처럼, “서울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아마도 지하철역이나 지하 주차장 혹은 도시 곳곳에 있어 있는 비상 대피소 중 하나에 숨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습하며 전쟁을 시작한 지도 1년이 지났다.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 극성이었고, 설마 ‘전쟁을 일으키겠어?’라며 안일한 생각만으로 두 나라의 상황을 지켜보던 때였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을 일으켰고, 지금까지 사람들이 그 전쟁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를 향해 ‘오랫동안 준비해 온 대반격 작전 시점을 결정했다’고 밝혔다.(출처: 2023년 6월 1일, 디지털 타임스, 강현철 기자>


 전쟁은 여러 가지의 이권들이 맞물려 있어 시작하기도 어렵지만, 끝내기 쉽지 않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처음에는 양국의 갈등으로 시작되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각국의 이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한 마디로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내려질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싸움이다. 이 전쟁으로 세계 연료, 곡물 가격은 끝없이 치솟았고,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다. 코로나 엔데믹이 선언된 시점이지만, 조용한 태풍의 눈 속에서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바라보고 있다.


 결국 모든 서울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대피소동은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이라는 문자 한 통으로 종료되었다. 놀란 국민들의 불안들을 다독이는 안내나 사과의 말없이, 딱딱한 통보로 말이다. 한순간에 모든 이들을 공포로 밀어 넣을 수 있는 ‘전쟁’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이토록 쉽게 마무리될 수 있는 거였다. 왜? 우리나라는 국방 최고 책임자의 권한 안에 있는 분단국가이니까 말이다. 최고의 위기 상황에서는 어떤 변명도 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지시, 전달만이 중요할 뿐이다.


 북한의 도발이 지속되는 요즘, 앞으로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흘러갈까? 또 전쟁이 나면 누가 그 참혹한 현장으로 달려갈까? 현장학습 때 매고 갈 가방이 없다고 툴툴거리는 고등학생인 큰 애가?, 가뜩이나 많은 회식으로 배가 불룩 튀어나온 남편이?, ‘항상 놀고 싶다’고 찡찡거리는 둘째가? 그런 생각을 하면 이틀 전의 모든 일이 이렇게 ‘재미있는 해프닝’으로 끝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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