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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ug 19. 2023

힘내세요, 고3 담임 선생님

 고3 큰 애가 다니는 H고등학교에는 3대 기념일이 있다. 학교축제, 스포츠데이, J선생님 생일이 바로 그것이다. 해마다 J선생님의 생일이 되면 오랜 시간의 흔적으로 가득한 학교의 콘크리트 낡은 벽에는 대대적으로 이름 석 자가 크게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힘차게 나부끼고 많은 학생들이 모여 축하 이벤트를 벌인다고 했다.


 큰 애가 H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별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해마다 담임 선생님의 생일을 위해 자기 공부하기도 바쁜 그 반 고3 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현수막을 만들고 축하 행사를 벌인다니 말이다. ‘뭐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라고만 여기며 그 이야기를 무심히 넘겼다. 바쁜 학교생활에서 평범한 한 선생님의 생일이 매번 학교 축제 이벤트가 되는 것이 만무하니 말이다.

 

 올해 초, 큰 애가 고3이 되었을 때 아들은 굉장히 상기된 얼굴로 달려와 외쳤다.

 “엄마, 우리 담임 샘이 그 유명한 J선생님이에요.”

 “아, 그래?”

 처음 아이의 말을 들었을 때는 ‘담임 선생님이 J선생님’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 생전 처음 접해보는 고3 수험기간, 수험생인 아들 못지않게 엄마인 나도 무척 긴장한 상황이었다. 모든 고3의 과정들에 조바심이 났고,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수능에 관련된 시끄러운 소동들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모든 과정들에 조바심이 났고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아득하고 막막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유명한 J선생님이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라고 하더라도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선생님은, 그냥 ‘학교 선생님’일 뿐이라도 만 생각했다.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은 나의 고3 시절, 갓 결혼을 했던 담임 선생님은 이런저런 학교 업무들과 개인일정으로 항상 바빴다. 그분은 특별히 ‘나’라는 평범한 학생에게 시간을 할애하기에는 너무도 분주했다. 또한 그 당시 대부분의 학교 선생님들이 그렇듯이, 그분의 모든 관심은 학교의 이름을 빛낼지 모를 ‘SKY' 대학을 진학할 몇몇 ‘훌륭한’ 학생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 탓인지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길게 이야기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대학원서 작성을 위해 상담했던 고작 몇 분이 다였다. 두꺼운 대학 자료를 뒤적이며 수능 성적에 맞춰 원하는 대학들을 줄 세우기 하던 그 짧은 순간 말이다.


 실제로 그 당시 담임 선생님은 나와 상담을 진행하기도 전에 이미 많은 학생과의 상담으로 지쳐 있었다. 황토색 나무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의자에 앉자마자 선생님은 이런저런 조심스러운 말과 함께 “자, 네가 갈 수 있는 대학은 이 정도의 대학이다”라고 말했다. 그저 지금 나의 가치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잔인하게 일깨우는 시간이었다. 이런저런 학교 선택을 위한 전략 상담은 그 상황에서 필요 없었다. 그저 “네”라는 말만 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경험들 탓인지 고3 담임 선생님에 대한 특별한 기대가 없었다. 조금씩 줄어드는 시간들을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심정으로 보내고 있는 고3 학생들과 부모들에 비해 선생님들은 그저 ‘학교 업무’로만 학생들을 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J선생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좀 이상한’ 선생님이었다. 고3 담임이 되자마자 모든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부모님들이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무조건 응원과 지지를 보내 달라’는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모든 학교업무가 끝난 주말에도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맡은 34명의 아이들과 한 명 한 명 소통하며 ‘학습 매니저 역할’을 자처했다. 선생님의 이런 관심과 노력이 바로 해마다 그 반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현수막 생일 파티를 열어주는 힘이었을까?


  J선생님의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더 빛났다. 지친 아들이 열감기로 결석을 할 때 선생님은 무조건 아이의 마음을 다독이며 먼저 건강부터 추스르라고 말했다. 게다가 아이의 학교 입시상담을 할 때도 여러 편의 자료들과 지금까지의 대학을 진학한 선배들의 자료를 보여주며 부모에게 믿음과 확신을 주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문의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너무 이상적인 선생님의 모습이라, 한 번은 이렇게 떠 본 적이 있다.

 “너희 선생님, 혹시 잘하는 아이들만 상담하고 챙겨주시니?”

 그러자 아들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니요,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 34명이 모두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보내는 것이 목표래요. 차례대로 아이들과 얼마나 상담을 많이 하시는 데요.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각 대학의 입시 정보도 엄청 공부를 하세요.”

 그런 영향인지, 항상 학교생활에 무뚝뚝하던 큰 애는 어느새 선생님의 ‘광팬’이 되어 있었다. “엄마, 무슨 일이 있으면 선생님께 무조건 물어보면 돼요.”


 피트 데이비스의 책 <전념>은 빠르게 바뀌는 현대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탐색하는 현대인의 행동을 연구하고 ‘집중’하고 ‘전념’하는 힘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는 여러 가지 분야에서 전념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그중에서 그는 교육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질 좋은 교육이란, 아이들이 특정한 것에 애착을 형성할 다양한 기회를 학교 안팎에서 제공하는 교육이다.’라고 말이다.


 솔직히 요즘 아이들이 학교에서 깊은 ‘애착’을 형성하기에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배워야 할 기술과 사실이 너무 많아”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애착을 형성하기는 너무 어렵다. 지금까지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특히나 12년 동안의 초중고 교육을 매듭짓는 결과물을 앞두고 있기에, 다른 일들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친구들과 모범생들만 선호하는 학교 분위기를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각 개개인의 발전과 성장을 응원하면서 보내는 고등학교 생활도 충분히 가능했다. 선생님이 교복을 입은 학교의 구성원이 아니라 각자 꿈과 생각을 지닌 개인으로 보아준다면 말이다. H고등학교 아이들이 J선생님에게 유독 열광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오늘로 2024년 대학수학능력 시험까지 백일도 남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플 때 ‘몸부터 챙기라’고 챙겨준 선생님,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청춘의 나이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수 있지만 너희들을 무조건 믿는다’고 이야기하는 선생님, 해마다 졸업생들이 ‘술 사 달라’고 찾아오는 선생님, 내년에 우리 아들도 원하는 대학을 가서 그런 졸업생의 한 명이 되면 좋겠다. 선생님의 끊임없는 믿음과 격려는 힘겨운 수험생 생활에서 한줄기의 빛이다. D-89일,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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