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Sep 12. 2023

현대 사회는 다정한가?

 올해 8월에 개봉한 엄태화 감독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만큼 사람들의 반응이 다양한 작품은 드물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어떤 사람은 “너무 재미없다”라고 평하고, 또 어떤 이는 “한 번쯤은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라고 곱씹는다. 한 작품을 보고 나서 이렇게 다양한 소감과 느낌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아마도 이 영화가 사람들의 숨겨진 내면을 깊숙이 건드렸다는 뜻일 게다. 그렇다. 이 영화는 참 불편하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웹툰 <유쾌한 왕따>이 원작으로, 대규모 재난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황궁 아파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그려낸 영화이다. 초반에 언급되는 아파트의 계급화 문제와 이러한 계급화가 지진으로 인해 정반대로 뒤집히는 모습은 현재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문제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품을 관람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는 ‘생존의 위협’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원인 불명의 지진으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무너졌지만 오직 황궁 아파트만이 온전하다는 기이한 사실에서 시작한다. 극심한 추위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물과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황궁 아파트의 입주민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입주민들을 돌보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많은 외부인들을 품고 같이 죽을 것인가?” 아니면 “본인들의 생존을 위해 그들을 내 보낼 것인가?” 결국 그들은 외부인들을 내 보내기로 결정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힘들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존의 기여도와 아파트 ‘자가’와 ‘전세’ 여부에 따라 계급을 나누고 배척하기 시작한다. 처참한 지옥도의 시작이다.


 ‘생존의 위협’이라는 악재 앞에서 ‘인류애’와 ‘인간성’은 참 ‘쓸모없는’ 감정이다.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그렇다.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의 선함’을 보여주는 명화(박보영)는 많은 영화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을 일으키는 인물이다. 어떤 사람은 삭막한 환경 속에서 외부인들을 돕고 배려하는 그녀를 가리켜 ‘회색빛 환경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남기는 인물’이라 평했다. 또 어떤 이는 아무 대책 없이 공동체의 균열을 만드는 명화가 ‘답답한 민폐 캐릭터’라고 비난했다. 인간의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위기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런 점에서 영화는 나날이 불안해지는 지구환경 속에서 현대인들이 가질만한 깊숙한 공포심을 불편하게 자극했다.


 이 작품을 보고 난 후, 남편에게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결혼하기 전이라면 외부인들과 같이 공존하는 선택을 하겠지만, 지금처럼 가족이 있는 상황에서라면 본인도 외부인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답했다. 이와 똑같은 질문을 고등학생 아들에게 던졌다. 큰 애는 조금 고민하더니 그런 재난 앞에서는 생존이 더 중요하지 않겠냐며 확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요즘 시대는 마냥 ‘다정’하고 ‘베풀기’만 해서는 살기가 힘들다고 했다.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 2021)는 진화인류학 및 사회 심리학적 관점에서 우리 인류가 어떻게 인류의 발전이 진화해 왔는지 밝히는 책이다. 두 저자가 발견한 인류 발전의 키워드는 정답처럼 알려진 ‘적자생존’이 아니라 ‘친화력’ 혹은 ‘다정함’이다. 서로에 대한 다정함이 협력을 만들고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만들어 강력한 경쟁자였던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를 제치고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밝힌다.


 얼마 전 이 책으로 진행한 D 고등학교  4차시 독서 토론 수업에서 아이들은 ‘다정함’이 인류의 생존에 큰 힘을 작용했다는 사실에 강한 의구심을 드러냈다. 학생들의 끊임없는 질문과 치열한 의구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인류 발전의 성격과 현대 사회의 본질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사회의 ‘다정함’보다는 ‘경쟁’에 익숙해 있었고 누군가를 제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불안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우리 때보다 더 풍요롭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일찌감치부터 현대 사회의 매정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토론의 끝자락에서 아이들은 서로에게 물었다. “현대 사회는 다정한가?”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은 “아니‘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 선택적으로 다정함을 선택하게 되는 사회‘라고 말했다.

 우리는 불안하다. 끝도 없이 들리는 기후 재난의 위기 속에서, 바늘구멍보다 좁은 출세의 경쟁 속에서 조심스레 서로에게 다정함을 찾는다. 그러면서 숱하게 접하는 위기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콘크리트 유토피아>은 불편하다. 그리고 유일하게 인간의 다정함을 보여줬던 명화는 ‘더’ 불편하다. 그러나 결국 그녀에게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처럼 차가운 현대 사회에서 그녀의 행동이 실낱처럼 작은 온기의 불씨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을 꿀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