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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23. 2021

오늘도 나를 위해 글을 쓴다

청소년 소설 쓰기 시도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청소년 소설 쓰기에 돌입했다. 한 살 두 살 먹어가는 나이와 반비례하며 내 상상력은 점점 고갈되고 있지만 새로운 창작에 대한 욕구만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처음 아이들의 동화, 청소년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막연히 느꼈던 계기는 우리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였다. 밤톨만 한 녀석들이 똘망똘망 눈망울로 엄마를 다정스레 쳐다보며 종알거리는 모습들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한시라도 빨리 동화를 써서 아이들 손에 착 안겨주고 싶었다. 두 번째로 동화, 청소년 소설을 써야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은 아이들이 중학교를 진학하면서부터였다. 울 귀염둥이들은 그 사이,  귀엽고 반들반들한 모습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울긋불긋한 여드름투성이에 책이라면 손사래를 먼저 치는 심통 말썽꾸러기들로 변해 있었다. 날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열심히 핸드폰만 두들겨 대는 디지털 인종들을 보니 한시라도 빨리 문자의 세계로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창작의 세계라는 곳이 막연히 아이들이 예쁘다고, 아이들이 걱정된다고 쉽게 오갈 수 있는 세계는 아니었다. ‘너’를 위해서 이 일을 한다는 말은 결국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비겁한 변명일 뿐이었다.


 ‘너’를 위해, ‘네 인생’을 위해 살아간다는 말로 누군가의 인생을 꿈꾸기를 몇 년, 창작의 세계에 발을 처음 디디게 된 계기는 결국 나를 위해서였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절망감, 내 이름 석 자로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희망이 자꾸만 창작의 길로 걷게 했다.

갑자기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날, 그날도 역시 나는 새벽부터 집을 나서 지방에 있는 학교 수업하러 가느라 지쳐 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상태에서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회의감이 물씬 들었다. 그날은 마흔 살이 넘도록 내 이름으로 쌓아놓은 것은 하나도 없고, 불성실한 우리 집 미래 독자들은 점점 나이를 먹어 더 이상 글을 읽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떨던 그런 날이기도 했다. 그래서였다. 갑작스레 모든 일을 정리하고 순간의 일탈을 선택한 이유는. 그날 난 점점 솟구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절망감을 원동력 삼아 밀려 있던 일들을 모두 정리하고 서울 신촌에 있는 ‘한겨레 아동문학 창작 교실’에 등록했다.


 돌파구를 삼아 등록한 한겨레 창작 교실에서 보낸 몇 개월은 꿈만 같았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신촌 대학생들이 자주 찾는 교실 앞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뽑아 들고 교실에 들어서면 부드러운 커피 향과 함께 온 세상이 향긋했다. 대한민국은 일상으로 바빴지만 나는 같은 고민을 하던 문우들 사이에서 한량처럼 여유로웠다. 책으로만 접하던 ‘김리리’, ‘이현’, ‘최나미’ 등 작가들을 실제로 접하며 내 습작들을 합평받으며 하루하루가 꿈만 같았다. 그렇게 몇 개월을 꿈속에서 보내고 문우들과 함께 문집을 발행하고 난 뒤 쓰디쓴 현실이 다시 내 앞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작품을 쓰기만 하면 당선이 될 것 같았고 글만 쓰면 행복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전업 작가의 연봉이 얼마인 줄 아냐.’ ‘오르지 못한 나무를 쳐다보지도 마라.’ ‘등단을 했다고 해도 수천 계단에서 발 한쪽을 올렸을 뿐이다.’라는 선배 작가들의 조언들이 가슴 깊숙이에서 쓴 물처럼 솟구쳤다. 같이 합평하며 꿈을 꾸던 15명의 문우도 어느덧 6명으로 줄어버렸고 그마저도 현재 1명이나 2명만이 글을 올리며 창작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출판사들을 자주 두드리지도 않았고 공모전에 작품을 많이 내지도 않았지만 한 번 두 번 맛보는 실패의 경험들은 자꾸만 나를 움츠리게 했다. 여러 번 포도를 먹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이솝 우화’ 속의 여우가 결국엔 ‘저 포도는 정말 신 포도일 거야.’라며 포기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요즘 다시 청소년 소설을 쓰려고 마음을 먹은 것은 ‘그냥’ 때문이다. 예전처럼 아이들을 위해서도 내 절망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아닌 ‘그냥’. 매일 조금씩 30분씩 글을 쓰며 이런저런 포기와 상처로 구멍 난 내 마음을 메우고 있다. 어떨 때는 글 속에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가족들을 험담하기도 하고 나를 몰라주는 세상을 욕하기도 한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과 마음들이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글을 쓴다는 것이 참 재미있는 일이구나.’ 새삼 느낀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이6000년 이상 글을 써온 바탕에는 이런 비밀이 숨어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쓰고 저 너머에 있는 창작의 우주에게 졸라 본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그동안 못 썼던 것 몰아서 열심히 쓸 테니 제발 빠른 시일 내에 답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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