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Oct 04. 2023

인생의 마지막 순간, 성공의 의미

 가장 잘 보이는 책꽂이의 한 구석에는 미국 작가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가 항상 자리 잡고 있다. 하얗고 단순한 배경의 책 표지, 앞면에는 주인공 스토너인 듯 보이는 한 남자가 흑백의 거친 연필 스케치로 그려져 있다. 그의 우수에 젖은 눈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삶의 기로마다 고민하며 걸어갔을 주인공의 묵직한 걸음이 자꾸만 상상된다. 이상하게도 이 책만 보면 괜스레 마음이 먹먹하다.


 <스토너>는 한 남자의 평범한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문학을 사랑했으며 묵묵히 소박하고 평범한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많은 독자들은 ‘세상의 기준에서 실패자와 다른 없는 삶’을 산 한 남자의 이야기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들은 이 책이야 말로 본인의 ‘인생 책’이라며 자신 있게 말한다.


 그는 다른 소설들의 주인공처럼 화려한 성공도, 반짝이는 모험담 하나 지니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으로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야만 했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른 동료들처럼 권력과 명예를 가질 수 있는 출세의 길로 나서지도 못했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한 대학의 평범한 문학교수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다. 어쩌면 지루해 보이는 한 남자의 일대기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소박한 그의 삶을 따라가며 무의식적으로 본인들의 삶과 연결시킨다.


 특히, <스토너>에서 독자들의 마음을 가장 뭉클하게 하는 부분은 마지막 장면이다.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 이렇게 자문한다. “넌 무엇을 기대했니?” 그가 지나온 자신의 삶과 사랑하는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헤아리며 ‘넌 무엇을 기대했니’라고 던지는 3번의 질문들, 독자들은 이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그동안 지녔던 ‘삶의 기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삶에 대한 집착이 클수록 인생의 순간순간은 아름답지 못하고, 본인의 기대를 따라주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만도 큰 편이다.


 스토너는 죽음을 앞두고 스쳐 지나간 누군가에 대한 불만과 삶에 대한 미련을 말하기보다는 그동안의 삶을 담담히 정리하고 있다. 그는 미처 가지지 못했던 성공의 기회보다는 진정으로 원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의 추앙을 원하기보다는 본인에게 더 충실하고, 집중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본인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또 무엇을 기대했을까? 스토너의 이런 모습이 먹먹하면서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삶에 대한 관조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긴 역사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는 묵묵히 본인의 삶을 살았다.


  여러 인물들이 몇 세대에 걸쳐 이끌어가는 긴 호흡의 대하소설을 읽으면 가끔 허무해진다. 분명 1세대 주인공 A의 시선으로 모든 일들을 바라봤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주인공이 바뀌어져 있다. 대하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A가 죽었다고 해서 그대로 끝나지 않는다. 또다시 다른 인물 B가 주인공이 되어 그 이후의 이야기를 펼쳐간다. 그리고 또 다른 인물 C가 제각각 그들만의 삶을 이끌어 간다.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적인 ‘나 하나의 삶’이 끝났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또 다른 누군가가 그들만의 발걸음으로 이후의 세상 이야기를 채워나갈 것이다.


 사람들은 본인들이 세상의 유일한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누구보다 돋보이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못한다. 특히 SNS 상에는 빛나는 성공과 유명세를 내세우지 못해 안달이 난 인간 군상들로 가득하다. 그들이 자랑하는 화려한 이야기들을 찬찬히 읽으면 마음이 복잡하다. 한편으로는 부럽다가도 또 어떨 때는 나만의 조용한 은둔 세상으로 파고들고 싶다. 내 이름 석 자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으로 유명해지고 싶지만, 그와 동시에 無名의 한 사람으로 조용히 살고 싶다. 가끔은 유명한 사람만이, 돈이 많은 사람만이, 권력이 있는 사람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인생의 진리에 반항하고 싶다.


 무척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하신 친정아버지는 항상 ‘성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공부를 한다면 무조건 ‘일등’을 해야 하고, 돈을 번다면 무조건 ‘많이’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버지가 원하는 일에 욕심도, 재능도 없는 나는 일찌감치 ‘실패자’로 낙인찍혔다. 예전에는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무척 괴로웠다. 하지만 이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아버지의 ‘성공의 기준’과 나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어린 시절은 ‘누군가와 경쟁해서 무조건 1등을 하라’는 이야기로 도배되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네가 꼭 하고 싶은 일을 해라’며 지켜봐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진정한 성공의 의미는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깊이 주입된 아버지의 성공 개념이 나의 마음을 뒤흔들 때가 있다. 친정아버지 기준에서 성공하지 못한 삶, 나약한 딸, 기대에 못 미치는 딸.... 그럴 때마다 숨겨진 열등감이 나를 끝없는 우울의 수렁 끝으로 끌어내린다. 아버지의 성공기준과 나의 현재 모습을 비교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스토너>를 꺼내든다. 그의 소박한 삶, 미련스러울 만큼 답답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도 흔들리는 내 마음이 가라앉는다.


 항상 높은 곳을 바라보지 않아도, 눈에 띄는 성공을 갖지 않아도, 내 삶은 그럭저럭 잘 흘러가고 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 어떤 말로 이 세상과 이별할지 모르지만,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 행복했어. 이런 말로 마지막 소감을 남기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앉은 자리는 바뀔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