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Oct 08. 2023

우리와 조금 많이 다른 세대

 가끔 아이들에게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어떤지 봐 달라고 할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아이들은  글을 다 읽지도 않은 채 대충 전체단락만 보고서 “엄마, 너무 길어요.”라고 소리친다. 그들은 그렇게 한참을 찡찡거리다가 “길긴, 뭐가 길어? 그냥 읽어봐.”라는 나의 반복된 강요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글을 읽는 시늉을 한다. 정말 마지못해서 말이다. 읽은 지 몇 분도 안 되어 “뭐, 그럭저럭 괜찮네요.”라며 대충 글 읽은 소감을 마무리한다.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이상한지에 대한 자세한 코멘트 없이 말이다. 그리고는 엄마가 다시 봐달라고 부탁할까 봐 최대한 멀리 도망친다. 그렇다! 우리 아들들은 세상에서 가장 ‘까탈스러운 독자님’이다. 그것도 긴 글 읽기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현역 고. 등. 학. 생. 님들’


 얼마 전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의 절반가량이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라는 기사를 읽었다. <매일경제/2023.10.06>는 10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Z세대 문해력’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20대 45%가 “매우 깊고 간절한 사과를 의미하는 ‘심심한 사과’의 뜻을 알지 못”했고, “3일 후를 의미하는 ‘글피’에 대한 정답률도 60%”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사실 이런 결과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젊은 세대들의 독서 기피와 영상 매체 과도 시청으로 문해력 부족 현상을 예언했다. 실제로 학교 수업을 가면 긴 지문 읽기를 버거워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글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무슨 뜻인지 이해 못 해 그 의미를 되물어보는 학생들이 태반이었다. 이런 상황을 가리켜 많은 교육자들은 “예전에 비해 문해력이 떨어져서 큰일이다”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독서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 역시도 이런 문해력 부족현상을 걱정하며 요즘 아이들의 독서교육에 힘을 기울이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을 볼 때면 항상 책을 가까이하라고 잔소리를 해댔고, 글쓰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관점이 바뀌고 있다. 기성세대와 아이들의 세대가 살아갈 환경이 이렇게나 다른데, 굳이 내 관점을 강요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물론, 책 읽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만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생소한 단어의 뜻을 잘 모른다고 해서 그들을 ‘모지리’인 것처럼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아이들의 진짜 특별한 능력은 뜻밖의 영역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기성세대와 뚜렷하게 비교된다.


 몇 년 전 가족들과 함께 유명 음료 가게 공X에 들어섰을 때의 일이다. 가족들을 앉히고 포장 주문을 하려는데 난생처음 보는 주문 시스템이었다. 당시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키오스크가 가게마다 막 설치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주문하고 돈을 건네는 과거의 ‘대면 주문’ 형식에 익숙해서인지, 이런 생소한 무인 결제 방식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계속되는 주문 실패와 기다리는 뒷사람들의 눈총을 느끼며 내 등 뒤에는 식은땀이 흠뻑 고였다. 결국 주문을 포기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큰 애가 다가왔다. 아들은 쓱 한 번 훑어보더니 나더러 ‘당황하지 말고’ 천천히 해보라고 조언했다. 결국 그날 아들의 적절한 도움으로 키오스크 첫 주문의 위기를 넘겼다.


 분명 책을 읽고 요약하고 글을 쓰는 활동은 아이들에 비해 내가 더 능숙하다. 하지만 이런 신문물을 접하거나 원하는 영상을 찾는 부분은 우리 아이들의 능력을 따라갈 수가 없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어른인 내가 익숙하지 않은 신문물을 두려워하거나 잘 모른다고 해서 ‘모지리’처럼 무시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능력 안에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문제는 생각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어른인 ‘나’다. 가끔은 마땅히 알아야만 하는 것을 그들이 모를 때 무의식적으로 한숨을 쉬거나 답답해하곤 했다. 먼저 세상을 접한 어른이기에, 사회를 아는 성인이기에, 무의식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옳고 아직 어린 네가 생각하는 방식이 틀리다’라는 인식을 가졌다.


 문해력 우려 현상은 처음 국한문 혼용의 시대에서 한글전용 시대로 바뀌는 과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보다 4살 위인  남편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국한문 혼용 시대’이라 의무적으로 ‘한자 공부’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의 방침으로 ‘한글 전용 정책’으로 바뀌느라 정작 나는 무조건 한자를 외우기보다는 적당히 공부했다. 그런데도 대학 가는 데는 지장이 없었고, 발행되는 신문 역시 ‘국한문 혼용’에서 ‘한글’ 위주로 바뀌었기에 사회이슈를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도 당시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한글 전용 세대’들의 ‘한자 일자무식’에 대해 한탄하곤 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이들의 문해력 부족 현상이 걱정스럽지만, 어쩌면 미래에는 독서력을 키우지 않아도 다른 해결방법이 나올 수도 있다. 요즘은 옛날처럼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일일이 외우지 않아도 전화통화가 가능한 시대이다. 아이들 역시 직접 통화보다는 SNS 사용이 더 익숙한 세대들이다. 그들은 긴 글로 자기 마음을 표현하기보다는 영상과 그림으로 선호한다. 그렇다. 예전과 지금의 환경 자체가 판이하게 다르다. 그리고 미래는 지금보다 더 엄청난 대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긴 글 읽기를 싫어한다고 해서, 영상 보기를 밥 먹듯이 한다고 해서 ‘아이들을 모자라다’라고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이 좋아하고 잘하는 영역이 있고 어른인 내가 편하고 익숙한 분야가 다를 뿐이다.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호이포이 캡슐'과 물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