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편은 재택근무 중이다. 우리 집의 가장 중요한 생계비를 책임지고 계시는 존경하는 가장 님은 넓은 거실 컴퓨터 책상에 앉아서 온갖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 남편에게 커피도 타 드리고 식사도 꼬박꼬박 챙겨야 하지만 요즘 계속 뚱한 표정으로 대하고 있다. 맞다. 요즘 주부 반항기다.
이번 주 월요일, 날짜도 콕콕 박아 두어야겠다. 이 날짜는 경축일과 마찬가지이니까. 2021년 11월 22일부터 학교 전면 등교가 실행되었다. 그래서 코로나 내내 지저분한 모습으로 집에서 방목하던 남자 3명이 줄줄이 자기 공간으로 찾아들어갔다. 큰 애는 기숙사 학교로, 신랑은 회사로, 둘째는 가까운 학교로. 세 명 모두 잔뜩 찌푸린 얼굴로 가기 싫다며 소리쳤지만 어쩌겠는가. 정부가 그렇게 하라는 데. 그리고 나는 다시 나만의 자유를 되찾았다.
홀로 있을 지유가 지나간 자리는 너무나 황량하다. 같이 있을 때 귀중함을 몰랐기에 그 존재를 더 그립고 그립다. 혼자 있을 때는 매 끼니를 챙겨 먹지 않아도 된다. 끼니를 챙겨 먹을 때도 그냥 김치 하나, 김 하나만 있어서 밥만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고기반찬 하나 없어도 밥맛만 좋다. 가끔은 빵으로 끼니를 때워도 되고, 일하느라 너무 바쁘면 일이 다 끝나고 먹어도 된다. 사람들이 보고플 때는 전화해서 불러내도 되고 바람이 그리울 때는 신발을 신고 훌쩍 나가도 된다. 매 순간 시간을 확인하며 지내지 않아도 된다. 시간의 노예로, 끼니의 노예로 살지 않고 자유를 누린다니 얼마나 행복한가. 무엇보다 한정된 시간의 자유이긴 하지만 이 집을 내가 원하는 데로 살 수 있다니 꿈만 같은 일이다.
사실 위드 코로나 이전에는 매번 북적거리는 가족들로 정신적으로 지쳐있었다. 특히 나만의 공간이 없어서 더 그런지 모르지만 가는 걸음걸음마다 일거리 투성이었다. 부엌으로 가면 설거지해야 할 일거리가, 화장실로 가면 빡빡 닦아줘야 할 물때들이 자꾸만 눈에 보였다. 매번 점심시간이 다른 가족들의 식사 시간을 챙겨야 했고 혹시나 방해될까 봐 TV도 제대로 켤 수가 없었다. 항상 떠돌이처럼 이곳저곳 어슬렁대기만 했다. 상시 대기조처럼.
그럴 때 나의 유일한 쉼터는 오직 안방뿐이었다. 커다란 침대에 화장대, 그리고 욕심을 내어 꾸역꾸역 밀어 넣은 나의 앉은뱅이책상 하나가 초라하게 자리 잡는 곳. 그곳에서 집중해서 일을 하려고 하면 집 안의 온갖 소리들이 스며들어왔다. 아들들이 안방 화장실 이용하는 소리, 가까이 있는 부엌에서 무언가를 먹는 소리, 신랑이 잠깐 휴식하느라 켜 놓은 거실의 TV 소리. 왜 이럴 때만 세상의 소리들이 이렇게 잘 들리는 걸까. 나날이 쌓여가는 것은 스트레스요, 오늘도 내 일을 다 못 끝냈다는 울적함뿐이었다.
오늘은 기숙사에 간 고등학교 아들 책상 방에서 글을 쓴다. 신랑의 재택근무하는 소리가 안 들어오게 이어폰을 끼고서. 이런 행복도 4-5시간 후면 끝이다. 내일이 개교기념일이라고 보통 때보다 일찍 집에 보내준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런. 안 그래도 되는 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본심이 나온다.
예전에는 홀로 타지에서 고생할 아들을 생각하며 어떻게 기숙사 학교를 보낼까 걱정만 앞섰을 때가 있었다. 같은 시기에 아들을 다른 기숙사 고등학교로 보낸 친구는 홀가분해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몇 달 동안 계속 울적했었다. 아들 보고 싶어서 어쩌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코로나로 가족들이 온종일 북적대는 시기를 2년 남짓 보내고 보니 혼자 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혼자 글도 쓰고 커피도 마시고, 가족들의 끼니 걱정 없이 오가는 자유. 프리랜서라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좋기도 하지만 이런 날은 좀 슬프다. 또 점심때가 다가오는구나. 에구. 홀로 있을 자유가 지나간 자리는 더 간절하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