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여러 문학 장르 중에서 시가 가장 어렵다. 자연 속에서 시어를 캐고, 감성을 최대한 농축시켜서 운율을 맞추는 과정이 너무도 힘들다. 시는 쓰기도 어렵지만 읽고 해석하는 과정에도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글쓰기 분야가 바로 시 쓰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시인들의 작업들을 무척 흠모하고 존경한다.
최근 김소연 시인이 한 신문기사에서 미국 시인을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루이스 글릭이 베일을 걷고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을까 (중략) 루이스 글릭이 시를 통하여 얼마나 여러 번 삶을 살고 죽음을 통과하고 또다시 살아나 살아가고 또 죽음에 다다랐는지, 그 감각의 한쪽 부위나마 촉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시인에게 배운 것은 이것이다. 죽음이 비통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인간의 몰이해가 비통한 것이다. 루이스 글릭은 지난 13일에 눈을 감았다. 베일 바깥으로 비로소 온전히 나아갔으리라. 시인의 명복을 빈다. <출처: 중앙일보, 2023.10.18>
시인이 추모하는 주인공은 루이스 글뤽,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한국독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지만, 그녀는 노벨상을 수상하기 훨씬 전부터 고전 신화, 종교, 자연 세계를 주제로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2020년 노벨 문학상 등 작가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들을 휩쓸었다. 게다가 시인 지망생이라면 그녀의 시집을 무조건 필독서로 권한다고 한다. 미국 최고의 생존 시인이라고 불리던 그녀가 2023년 10월 13일 방년 80세의 나이로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자택에서 별세했다.
루이스 글뤽은 미국 문단에서 너무도 저명한 시인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번역된 시집이 없다. 오직 류시화 시인의 책 <마음 챙김의 시>에서 그녀의 시 한 편이 실려 있다. 이 시는 <눈풀꽃>으로 혹독한 겨울의 절망과 쓸쓸함을 견뎌내고 피어오르는 작은 꽃의 생명력을 노래한다.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루이스 글뤽 <눈풀꽃> (류시화 옮김) [마음 챙김의 시] 중에서
그녀는 삶과 죽음 속에서 부활의 희망을 꿈꾸며 특별한 시인이 되길 꿈꾸었다. 글뤽은 대중의 주목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그런 관심이 대중적이고 접근하기 쉬운 시인으로 여겨질까 두려워했다. 그녀가 꿈꾸었던 시의 세계는 좀 더 웅장하고 영원히 사람들의 마음에 기억될 불멸의 세상이었다.
글뤽은 10대 시절 거식증으로 고생했고, 자기비판도 심했다. 1960년대 중반까지 낮에 비서로 일하고 여가 시간에 시를 썼다.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고 심각한 글쓰기 장애를 겪기도 했다. 그녀는 초반에는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시를 엮어갔지만, 트라우마와 비탄이라는 내밀한 주제를 탐구한 이후에는 삶의 고통과 고독, 죽음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생명의 의지를 노래했다.
김소연 시인은 추모의 글에서 ‘잔혹하고 추한 것을 드러내는 것에 더 몰두할수록 시의 힘은 강해진다’고 믿는다고 했다. 짧게 함축된 언어로 시인들이 표현하고 싶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삶과 죽음 속에서 세상의 모든 면을 지켜보며 희망을 노래하던 시인, 루이스 글뤽이 불멸의 세계로 떠났다. 그녀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