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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20. 2023

편의점 전성시대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은 독자들의 호평을 받은 베스트셀러 소설이다. 이 작품은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하던 독고가 지갑을 주워준 인연으로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를 하면서 벌어지는 7편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청파동 한 골목에 자리 잡은 작은 편의점은 제목처럼 ‘불편한 편의점’이다. 이곳은 다른 편의점에 비해 진열해 놓은 물건 종류도 적고 할인행사도 형편없다. 언제 망해도 이상할 게 없는 곳이다. 하지만, 알바생 독고와 손님들 사이에는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정이 넘쳐난다. 적어도 동네 주민들에게 이 편의점은 따뜻한 위로의 공간이자 동네 사랑방이다. 아무리 불편해도 사람들이 청파동 편의점을 계속 찾는 이유이다.


 소설과는 달리 현실 속의 편의점은 불편하지 않다. 간단한 끼니와 급한 택배 물품을 해결할 수 있는 편리한 공간이다. 이벤트 날이면 각종 할인행사도 많이 한다. ‘원 플러스 원’, ‘투 플러스 원’ 행사되는 상품을 집을 때면 횡재한 기분마저 든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이, 각종 행사와 깔끔한 외관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계속 사로잡는다. 우중충하고 무뚝뚝한 동네 작은 슈퍼들이 자꾸만 화려한 편의점으로 갈아타는 이유다.


 얼마 전 우리 아파트 정문 앞의 작은 마트가 문을 닫았다. 이곳은 10년 넘게 자리를 지키던 아파트 터줏대감이자 사랑방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아파트 정문 한쪽 상가에서 환한 불을 밝히고 있던 작은 마트였다. 우리 가족들은 이 마트를 무척 좋아했다. 주말 늦은 아침, 갑자기 라면을 먹고 싶을 때나 마땅히 반찬거리가 없을 때 종종 이 마트를 들렀다. 대형 마트처럼 원 플러스 원 행사나 큰 할인은 없지만, 그때그때 필요한 생필품은 꼭 갖춰져 있었다. 식구들은 이 작은 마트를 우리 집의 숨겨진 ‘커다란 냉장고’라고 부르며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그 숱한 대기업의 편의점 열풍에도 꿋꿋하게 지조를 지키는 동네 슈퍼였다. 결국 이곳 역시 문을 닫았다.


 갑작스러운 마트 폐업 소식을 접한 날, 주인에게 물었다. “아저씨, 왜 갑자기 마트 문을 닫는 거예요?” 아저씨는 피곤한 기색으로 “그냥, 좀 쉬려고요.”라고 말하며 폐업 이유를 얼버무렸다. 주인에게 폐업 이유를 자세히 듣지 못하니 여러 가지 추측으로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주인아저씨의 건강이 안 좋은 걸까?’ 아니면

 ‘그동안 다른 편의점 때문에 장사가 안되었던 걸까?’


 주인아저씨는 야속하게도 딱 이틀 동안 마트 물건을 할인해서 정리하고는 미련 없이 우리 아파트를 떠났다. 그동안 마트를 무지 사랑했던 우리 가족들에게 많은 궁금증과 아쉬움만을 안겨놓은 채 말이다.


 사실 내색하지 못해도 아파트 동네 마트가 문을 닫을까 무척 불안했다. 그곳은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대기업 ‘**편의점’ 이름을 달지 않은 가게였다. 맞은 편의 A 아파트도, 길 건너 B 아파트도 세련된 영어 이름의 ‘** 편의점’으로 바뀐 지 오래였다. 오고 가는 꽤 많은 학생이 종종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과 빵을 사 먹었다. 하지만 주부로서는 아무리 할인행사를 많이 해도 편의점에서 살만한 반찬거리가 없었다. 간단한 커피나 우유 정도면 몰라도 편의점에서 나물거리나 반찬을 할 수 있는 것들은 살 수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우리 동네의 편의점들이 모두 ‘불편한 편의점’이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우리 아파트의 작은 마트가 계속 운영되기를 원했다. 주변이 모두 편의점으로 바뀌어도 이 마트만은 계속 유지되길 빌었다.


 바야흐로 편의점 전성시대다. 눈에 보이는 아파트 상가의 작은 마트들은 모두 ‘** 편의점’으로 바뀐 지 오래다. 왜 이렇게 편의점이 주변 곳곳에 생기기 시작한 걸까? 알 수 없다. 이제는 주변에서 평범한 동네 마트를 더 찾기 어렵다. 깔끔한 외관과 늦은 시간까지 지속되는 운영시간, 원플러스 원 할인행사까지 진행되는 편의점들을 평범한 동네 마트가 경쟁에서 이기기는 불가능하다. 대형마트가 들어설 때마다 전통시장에서 곡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동네에서는 편의점들이 생길 때마다 동네마트들이 죽어난다.


 고객들이 이토록 동네 마트들을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편의점과 동네 마트를 함께 이용해 본 입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편리성이다. 편의점은 포장 자체가 깔끔하고 빨리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끼닛거리가 많다. 배달 서비스부터 각종 할인행사까지 큰 대형마트의 축소판이다. 그에 반해 작은 마트는 할인은 없다. 그저 그동안 주민들과 함께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물건을 그때그때 잘 채워놓았을 뿐이다.


 편의점은 참 편하지만, 불편하다. 그곳에서는 온갖 편리한 물건들이 가득하지만 정작 필요한 물건들은 찾기가 어렵다. 대중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읽지만, 가격이 비싸 쉽게 다가서기가 어렵다. 원플러스원 행사는 그 높은 가격을 숨기기 위한 상술이 아닐까? 의심병이 도졌다.


 오늘저녁을 준비하다 냉장고에 달걀과 파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급하게 지갑을 들고 사러 나가려다 잠시 멈춘다. ‘아, 이제 마트가 없지.’ 우울한 마음으로 가스 불을 끄고 좀 멀리 떨어진 대형마트로 장 보러 나선다. 아파트 정문의 상가, 마트가 없어진 장소 간판에 웬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대기업 이름이 붙은 편의점 **점’, 결국 우리 아파트 상가에도 대기업 편의점이 들어온다. 앞으로 이곳이 얼마나 우리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할지 궁금하다. 우리 주민들의 욕구를 잘 채워줄지 아니면 지갑만 비워줄지는 이제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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