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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10. 2021

목소리의 양면성

‘옥에 티’라는 말이 있다. 반질반질하게 잘 다듬어 놓은 옥에도 작은 흠이 있다는 말이다. 흔히 훌륭한 사람이나 물건에 있는 사소한 단점을 말할 때 ‘옥에 티’라고 하지만, 바꿔 말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말일 수도 있다. 겉으로 평범하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조용히 고치고 싶은 점들을 하나둘씩 마음속에 담고 있다는 말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얼마 전,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는 체력을 좀 키우고자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인바디를 재고 필라테스 호흡법을 배우고 이런저런 기초적인 기구 사용법을 배웠다. 늘씬하고 아름다운 필라 선생님과 즐겁게 기초 훈련을 하고 난 뒤 잠시 서로의 관심사,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냥 책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만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선생님이 반색을 하며 ‘대단’하다는 표현을 했다. 어쩐지 ‘목소리가 너무 나긋나긋하고 우아하셔서’ 그럴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 목소리는 그렇게 크지도 카랑카랑하지도 않다. 어릴 때부터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고 예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요즘도 그런 말을 종종 듣곤 한다. 항상 전화나 인터폰을 받으면 사람들은 꼭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래, 아가, 엄마 계시니?”

 좀 바쁘거나 귀찮을 때는 “엄마, 지금 안 계세요.”하며 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황당하게 쳐다보는 우리 아이들의 눈길이라니. 이런 나긋나긋하고 앳된 목소리가 살아가는 데 큰 결점은 아닐지 모르지만 문제는 내가 지금 학교에 나가서 아이들과 호흡하는 ‘강사’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점이다.


 평상시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일상생활할 때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학교에서 사춘기 아이들, 왁자지껄 한 초등학생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내 목소리가 묻힐 때가 많아 너무 아쉽다. 소리 높여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까먹을 때도 있다.


 고등학생인 큰 애에게 물었다.


 “아들아, 엄마 목소리 어떠니?”

 “친절하고 따뜻해 보여요.”

 “학교에서는 어떤 선생님의 목소리가 귀에 쏙쏙 박히니?”

 “카랑카랑하고 목소리가 큰 선생님이요.”

 “혹시 엄마와 같은 목소리를 가진 선생님들이 수업할 때는 어때?”

 “그냥 졸죠. 뭐.”


 한 번은 너무 고민되는 마음에 몇 달간 스피치 학원에 다녔다. 스피치 선생님 왈,

 “임 목소리는 목소리 자체가 어조가 높고 따뜻해요. 하지만 강사로서는 좀 어조가 낮고 내리 꽂히는 게 필요해요. 그런 연습을 위주로 해 봅시다.”

 바쁜 시간을 내어 ‘설민석’같이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싶었지만 결국에는 도루묵이었다. 다음에 다시 시작해 볼까?


 분명히 이 목소리도 장점은 많다. 아들 둘은 엄마가 목소리를 깔고 화를 낼 때는 조심조심 긴장하는 눈치지만, 보통 때는 엄마와 대화하고 마음 잘 털어놓는 데는 이 목소리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다 보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이 가득한 학교 교실에서 수업하는 것이 힘들 때도 종종 있다. 그래서 어쩌면 난 온라인 수업의 이점을 받은 수혜자 인지도 모르겠다. 온라인 수업에는 온라인 도구와 마이크와 교재만 있으면 수업할 수 있으니 목소리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곧 방학이라 조금씩 정리하는 단계이지만, 온라인 수업이 아닌 학교 수업 의뢰가 들어오면 난 또 고민한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과 잘 호흡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몰입시키며 어떻게 수업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아이들과 즐거운 수업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마음은 카리스마 넘치게 아이들을 휘어잡는 강사의 모습을 꿈꾸지만, 현실은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어르고 날래며 진땀을 빼는 내 모습이 떠 오른다. 아자,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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