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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방관과 열정사이

by 하늘진주


‘수수방관(袖手傍觀)’이라는 한자 성어의 의미는 소매에 손을 넣는다는 뜻의 수수(袖手)와 곁에서 바라보기만 한다는 방관(傍觀)이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옛날에는 옷에 주머니가 거의 없어 소매가 옷의 주머니 역할을 대신했다. 그 당시에도 큰일을 당한 사람 옆에 아무 할 일 없이 소매에 손을 넣은 사람의 모습이 썩 보기 좋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이 한자 성어는 일에 열정이 없거나 남의 일에 방관하는 사람들을 가리킬 때 자주 쓰인다.


어제 둘째가 중학교 첫 번째 기말고사 중 첫 시험을 치르고 삐죽삐죽 집에 들어섰다. 보통 시끌벅적한 걸음걸이와 다르게 조심스러운 발걸음, 눈을 마주치자마자 슬며시 던지는 아부의 미소.

‘아, 첫 과목, 망했구나.’

15년 동안 둘째를 그냥 키운 것은 아닌 듯, 녀석의 표정만 봐도 엄마의 촉이 저절로 작동한다. 분명히 어제 ‘훌륭한 엄마 행세’를 하고자 연기 연습도 하며 준비를 했지만, 막상 실전에 들어서니 표정 관리가 잘 안 됐다. 아마 진짜 연기 현장에 있었으면 당장 연기 그만두라는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졌을 것 같다.


“아들, 시험 어땠니?”

“XX, XX (아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공란으로 남겨 둡니다.)”

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점수군. 그리고 아들의 수많은 변명들이 귓속으로 쏙쏙 박히기 시작했다. 둘째가 그래도 ‘진~짜’ 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대충 열심히 들어주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아직 다음 시험이 남았다며 슬쩍 둘째의 등을 자기 방으로 넣어주었다. 냉장고에 열심히 쟁여두었던 달콤한 간식들과 함께.


둘째는 이상하게 공부량에 비해 결과가 썩 좋지 않다. 그 녀석이 매번 떠들어대는 공부량이나 시험 전날 공부하는 모습만 보면 전교 1등도 문제없이 차지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결과는 늘 뒤죽박죽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민이 많다. 내가 도와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매번 ‘수수방관’하며 둘째가 스스로 자신의 공부 방법을 터득하도록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열정 1타 강사’처럼 과목들을 하나하나 같이 붙들고 공부하는 방법과 시험 요령을 가르쳐야 할지 잘 모르겠다. 분명 누군가의 도움이 들어가면 둘째의 성적은 오를 것이다. 그런 후 그 녀석은 스스로 자신의 공부 방법을 터득하고 깨달을 수 있을까?


한 사람이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스스로 넘어지고 구르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어린 새싹이 수많은 비바람을 견디며 거목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사람이 시련을 즐기는 ‘영웅’이 아닌지라 이렇게 매번 실패와 도전을 거듭하는 과정이 버거울 때가 많다. 그럴 때 우리는 그 순간을 빨리 지나갈 수 있는 ‘비법’ 혹은 ‘요령’을 절실히 원한다. 사람들이 다이어트 약과 로또에 대한 유혹을 끊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힘든 순간을 ‘싹둑’ 기억에서 자르고 모든 길을 지름길로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비추어 그 결과가 결국 더 안 좋은 길로 인도할 것임을 너무도 잘 안다. 그렇기에 힘들어도, 괴로워도 묵묵히 자신만의 속도로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오늘은 둘째가 두 번째 시험을 치르는 날이다. 그것도 암기를 싫어하는 그 녀석의 최약체 과목인 역사와 도덕이 있는 날. 어떤 점수로 또 나를 고민에 빠뜨릴지 궁금하다. 오늘은 미리 ‘가스활명수’라도 사놓고 기다려야겠다. 할 수 있다. 힘들어도 스마일. 울지 말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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