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까지 나의 취침시간은 저녁 9시였다.(사실 나에겐 초등학교라는 표현보다는 국민학교가 맞을 것이다.) 엄격하신 부모님은 무조건 저녁 9시가 되면 우리 형제들을 재우기 위해 불을 끄셨다. 그러면 나는 안방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저녁 뉴스 시그널을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 당시 모든 세상 뉴스들은 나와 차단되었다. 학교에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와 관련된 반공 포스터를 여러 장 그릴 때면 ‘혹 전쟁이 일어날 까 봐’ 겁을 많이 먹곤 했지만, 그 외에 우리나라는 항상 꿈과 희망이 가득한 나라였다. 하지만 집만 나서면 내가 아는 현실과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대학교와 붙어 있어 항상 시위와 고함소리로 시끄러웠고, 매번 풍기는 하얀 최루탄 가스는 너무 매웠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궁금해하는 눈빛을 대할 때면 ‘너희는 몰라도 된다’며 입을 다물었다. 학교를 마치면 난 늘 불만 어린 표정으로 시위를 쳐다본 후,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집으로 향했다. 왜 대학생 언니와 오빠들은 거리에 몰려나와 시위를 하는지, 왜 경찰들은 그들을 잡아가는지, 왜 거리마다 벽보들이 저렇게 많이 붙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꿈과 희망이 가득하지만 이상한 나라, 그 시절을 회고하는 나의 기억이다. 나중에 그 당시의 역사를 배우고 공부하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요즘의 유튜브도 역시 우리 현실을 또 하나의 ‘꿈과 희망’으로 잠재우는 ‘저녁 9시 자장가’이다. 유튜브를 접속하면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콘텐츠들이 무한정으로 쏟아져 나온다. 한 번이라도 클릭했던 것들, 내가 ‘좋아요’라는 표시를 했던 것들, 내 눈길, 손길 한 번이라도 스친 것과 유사한 영상들이 우수수 밀려든다. 알고리즘의 마법이다. 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콘텐츠를 오랫동안 보다 보면 온 세상은 내 입맛, 내 취향대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신문이나 뉴스 속 현실은 또 다른 세상이다. 내가 ‘유튜브’에서 즐기고 행복해 왔던 현실과는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다. 여당과 야당이 다음 세대의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오미크론 바이러스’로 무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코로나 방역체계, 생명과학으로 1점이 왔다 갔다 하는 수험생들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온통 회색빛 세상이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너무 태평하고 그저 ‘아 학교 가기 싫다’만 습관처럼 내뱉는 둘째를 보면 고민이 많다. ‘현실은 네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단다’ 이야기하며 호되게 현실을 깨우쳐 줘야 할지 아니면 ‘그래, 현실은 네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거야.’라고 희망을 줘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온 우주에 네 소원과 꿈을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온 힘을 다해 이루어진다’는 말은 희망의 메시지일까? 아니면 현실도피의 메시지일까?
세상의 망각제, 유튜브를 즐기는 둘째가 보는 세계는 아름답고 온갖 재미있는 것들이 가득한 공간이다. ‘학교에 가라’는 메시지, ‘공부하라’는 메시지는 그 녀석이 사는 가상공간에서 자신의 현실을 방해하는 '수류탄'이자 '폭탄'일 뿐이다. 어제 그 녀석은 ‘시험’이라는 거대한 적을 물리치고 다시 돌아온 평화로운 일상을 축하하며 학원을 다 빼고 친구들과 놀러 나갔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그 녀석의 행방은 묘연했다.
요즘 아이들은 자신의 삶에 간섭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꼰대 유무’를 따진다고 한다. 둘째는 본인의 관심사대로, 본인의 입맛대로 영상을 제공하는 유튜브에서 온종일 허우적대고 있다. 솔직히 그 녀석이 어떤 영상을 보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유튜브를 보는 내내 히죽거리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아마 자기가 너무도 원하는 행복한 세계에 살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고달픈 현실보다는 행복한 가상세계를 원하는 법이니까. 요즘처럼 험난한 현실에서 난 둘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지금 그 녀석이 울더라도 현실을 인식시키고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할지, 아니면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야. 네가 좋아하는 것이 제일 좋지’라며 앞으로 더 좋은 미래가 기다릴 거라고 계속 희망을 넣어 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전문가들의 말처럼, 진짜 공부를 안 해도 본인이 좋아하는 일만 해도 되는 세상이 오긴 할지 정말 궁금하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내가 살아온 세상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걸까? 아직까지는 그런 징조가 잘 안 보인다. 여전히 수많은 똘똘한 학생들은 또 다른 하늘나라 ‘SKY’를 향해서 있는 힘껏 달리고 있고, 수많은 경쟁에서 지친 학생들은 ‘유튜브’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그들의 경주를 보며 난 오늘도 ‘채찍질과 당근’을 두 손에 쥐고 고민한다. ‘현실인식’과 ‘낙관주의’, 나는 어디에 줄을 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