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여행의 이유'

by 하늘진주

2박 3일 여행의 마지막 날, 제주도의 아침이다. 몇 개월간 많이 기다렸고 고대했던 여행이었다. 작년 연말 한창 바쁠 때는 1월 달력에 적힌 짙은 글씨의 여행 일자를 쳐다 보기만 해도 좋았다. 아웅다웅 사람들과 부딪히고, 일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현재 생활권에서 떠나 어딘가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현재의 느낌은 여행 전 기대하던 마음에 비해 담담하다. 난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찾고 싶었던 걸까?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p51)


작가 김영하의 말처럼, 일상을 떠나 여행을 온다 해도, 떠나온 그곳은 다른 사람들의 또 다른 현실이다. 내가 잠시 유예한 ‘청소하고 빨래하고 요리하고 일하는’ 것과 같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평범한 노동이 여행지의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현실이다. 지금 내가 돈을 지불하며 얻은 이 나른한 게으름과 휴식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면 또 다른 부지런함이요, 노동이다. 단지 게으름을 즐기기 위해, 단지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그토록 바라고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행을 하며 지금의 현실의 내 모습과는 다른, 좀 더 다른 단계로 뛰어넘고 싶은 ‘열쇠’를 찾고 싶었다. 현실의 때와 의무가 가득 묻어 있는 나의 정체성, ‘엄마, 딸, 며느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를 찾고 싶었다. 한 치 앞도 모르고 계속 꿈만 찾아 떠돌고 있는 내가 답답했고, 무엇을 해도 제자리인 나를 바꾸고 싶었다. 하지만 ‘재깍재깍’ 2박 3일의 여행 시간이 흐르는 동안, 먹고 놀고 즐기는 여행기간 동안 그 어디에도 ‘새로운 나’를 찾을 수 있는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현실의 나와 여행지의 나를 유일하게 연결하는 핸드폰의 연락들을 체크하며 나는 다시 현실의 나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낮 동안의 여행은 현실의 삶으로 분주한 사람들을 보며 나의 팍팍한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고즈넉한 여행지의 아침은 지금 나의 상태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내가 여행에서 얻고 싶었던 것은 지금의 나를 환골탈태하며 완전히 새로운 삶을 꿈꾼 것만은 아니었다. 그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서 한걸음 물러나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확인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수도 없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래, 이만큼 했으면 됐어. 그냥 편하게 살자’라고 살포시 포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제주도 아침의 또 다른 해가 밝아온다. 그저께는 비가 내렸고, 어제는 날씨가 맑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다. 오늘의 날씨는 또 어떤 날씨를 나에게 선물할지 모르겠다. 나의 기분과 마음과는 상관없이 자연의 해는 계속 뜨고 진다. 똑같이 주어지는 자연의 시간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각오로 열심히 달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포기하고 낙심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주어진 시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만이 중요하다. 자,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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