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아주 어려워지는 순간이 있다. 사람은 각각 독자적인 나라를 가지고 있는 섬과 같아서 마음의 벽을 세우고 문을 닫으면 그 사람의 마음에 와닿기가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고집스럽고 말이 도무지 통하지 아니하는 무뚝뚝한 사람을 가리켜 ‘벽창호’라는 표현을 쓴다. 이처럼 ‘벽’이라는 말이 사람과 연결할 때는 새로운 의미를 창조한다.
‘벽’이라는 말이 사람의 시선과 연결될 때는 말을 자유롭게 바꾸는 ‘색안경’이다. 이 의미의 벽 앞에서는 어떤 단어와 의미도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다양한 색으로 변한다. 다른 사람들이 뱉은 말들은 그 벽을 가진 듣는 이의 경험과 지식의 경계 속에서 마음껏 반죽이 되고 자유롭게 변형된다. 주로 듣는 이의 마음이 여유가 없어 말하는 이의 감정과 느낌을 미리 앞서서 분석하고 파악할 때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생각해 보면 내 주변의 다툼과 큰 소리 분쟁은 다 이런 ‘색안경’과 같은 벽이 장착될 때 일어났다. 대화 상대가 성격이 급하고 다른 일로 짜증이 나고 힘들었을 때 말하는 사람의 ‘문장 하나’가 혹은 ‘말투 하나’가 꼬투리가 되어 일이 일파만파로 퍼졌다. 며칠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고, 주변에서도 이런 경우를 종종 본다. 이럴 때는 참 난감하다. 말을 하면 할수록 사람의 모든 말들은 또 다른 생명력을 지난다. 말을 내뱉는 족족 '색안경' 지닌 사람에게 다른 의미로 창조되어 전달된다. 참 괴로운 일이다. 서로의 말의 벽들이 쌓이고 쌓여서 한 사람을 벽으로 둘러싸인 ‘고립된 섬’으로 만드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이럴 경우는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다. 어쩌면 말보다는 오히려 잠시의 차가운 침묵이 더 도움 될 수 있다.
또 다른 의미의 벽은 어떤 말도 통과시키지 않는 ‘견고한 철옹성’이다. 이 의미의 벽은 두 가지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원래 자신의 소신이 너무나 강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흔히 ‘꼰대’라는 불리는 나이가 많고 어느 정도 경험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지식도 있고 지위도 있어서 좀처럼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다. 석가모니가 세상에 나왔을 때 했던 말,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처럼 ‘우주 가운데 자기보다 더 존귀한’ 사람은 없다. 무조건 자신의 말이 맞고 옳다. 그래서 그런 사람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 힘들다.
두 번째는 ‘색안경’으로 인한 말의 벽들이 쌓이고 쌓여 서로 소통이 어려운 경우이다. 첫 번째 경우의 ‘철옹성’과 같은 벽은 한 사람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경우라면, 두 번째 경우의 ‘철옹성’은 두 사람 이상 모여 만들어 내는 벽이다. 이 경우는 주로 모든 갈등이 벌어지고 난 이후이다. 이미 말로, 분노로, 서로 날카롭게 쏟아내는 칼날과 언어의 공격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각가지 생채기로 너덜너덜하다. 차가운 침묵으로 서로의 끓어오르는 감정들을 식히기 전에 서로 연달아 감정의 공격만을 일삼아 도저히 타협점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그럴 때 이 거대한 철옹성의 벽들이 연달아 생겨난다. 그래서 서로의 철옹성이 무너지고 마음의 생채기가 아물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럴 경우, 해결 방법은? 잘 모르겠다. 시간이 약일지, 커다란 지진과 같은 행운이 작용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며칠 동안 계속 글을 쓸 수 없었다. 원래 모든 감정, 마음들은 다 글을 표현하고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부정적이고 슬픈 감정이 너무 극대화되면 쓸 수 없는 때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래도 사람은 살아야 하고 사람들의 소통은 연결되어야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보는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들, 모두 각가지 사정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각자의 독자적인 왕국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얼굴을 붉히는 경우는 이 두 가지의 벽이 가장 큰 이유일 듯싶다. 사람의 말을 의미 그대로, 혹은 그 말을 한 이유를 살펴보지 않고 자신의 부정적인 선입견으로 판단한 경우가 첫 번째요, 두 번째는 자기 생각만이 다 맞고 옳다고 여겨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경우이다. 그냥 한 다리 건너, 혹은 만나지 않아도 아쉽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상관없을 텐데, 평생을 만나온 가족의 경우는 해결이 참 어렵다. 이미 몇십 년이 지나 성인식을 지난 지도 한참이 되었건만 한 번도 자신의 뜻을 굳히지 않는 완고한 아버지 앞에서는 매번 아무 말도 못 하고 할 말을 삼키는 어린아이가 된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약이 될 수 있을까. 얼마 전에 가족들 사이에 있었던 '마음의 벽의 충돌'을 떠올리며 다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