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이 결혼 하실 때
시댁이 나름 부자였다고 하신다.
아내 할머님이 6,25전쟁때 피나민 상대로 음식을 팔아 기반을 잡으신 후 식당을 운영 하셔서 큰돈을 벌어 장인어르신은 유치원에 다닐정도로 부유한 집안이었다.
장인 어르신은 그 덕에 안좋게 말하면 한량이 같은 인생을 사셨다고 한다.
어머니 혼자 맏 며느리로 모든것을 감당 하셨다.
할머니의 식당을 물려 받아 다시 크게 확장 해서 오픈 하셨다.
오픈할때 규모가 커서 안성식당하면
동네에 번화가 중심가 역활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주변에 관광차가 들어올정도로 대형 고기집이 생기면서 화렸했던 안성식당은 점점 명성을 잃어가게 됐다.
장인어르신은 하고 싶은거 다 하시다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집에 누워있기 시작 하셨다.
더 이상 운영할 수 없어서 건물을 내 놓을 때 남몰래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안성식당에 있을 때 다방이 입주 해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오늘 남자 아이들이 빽다방 가서 음료 사온다니까 어머니께서 학생이 어디 다방을 가냐고 화를 내시는 바람에 한바탕 웃으면서 잘 설명을 드렸다.
어머니는 고기 식당을 하신 것처럼
한우를 직접 사오셔서 배부르게 같이 먹었다.
부모님 세대가 돌아가시면
이런 깊은 사랑이 남아 있을까.
세배를 하면서 훈훈한 설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