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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밀 Dec 27. 2021

아이와 영어로 대화하면 생기는 부작용

육아 일상 속 철학이야기

호주에서 살 때의 일이다. 아이의 학교 숙제를 봐주거나 책을 읽어줄 때면 나도 아이에게 영어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렇게 1년쯤 지났을 때, 재미있는 말버릇이 하나 생겼다. 한국말을 할 때에도 ‘엄마’ 대신 ‘나’라는 주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아이에게 처음으로 “엄마가 해줄게”라는 말 대신 “내가 해줄게”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때에는 아이도 나도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쳐다보다가 한참을 웃었다. 정말 이상한 표현이었다.


그 뒤로도 나도 모르게 자꾸 툭툭 튀어나오는 ‘나’라는 표현은 어색하기는 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왠지 아이와 대등해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할 때마다 ‘엄마’라는 역할을 상기해도 되지 않으니, 대화가 훨씬 담백하고 심플해졌다.


예를 들면 “엄마는 ~~~~ 해서 ㅇㅇ이가 안 그랬으면 좋겠어.”라고 빙빙 돌려 말하던 것을 그냥 “난 싫은데?”라고 말해버리는 식이다. 빙빙 돌려 말할 때는 들은 체 만 체하던 아이가 싫다는 직설적인 표현에는 오히려 “왜 싫은데?”라고 물어봐준다. ‘나’라는 주어를 사용한 원초적인 대화 덕분에 아이와 상호작용이 훨씬 쉬워졌다.

아이와 소통을 잘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지도 모른다. ‘엄마’의 권위를 내려놓고, ‘엄마’ 대신 진짜 ‘나’를 표현하는 것! 엄마라는 이유로 뭔가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그냥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싫으면 싫다 힘들면 힘들다 담백하게(짜증이나 비난은 섞지 말고) 감정을 드러내는 것! 애초에 대화의 본질은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지금은 한국에 돌아온 뒤 한참이 지났기에 예전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아직도 종종 무의식 중에 ‘나’라는 표현이 튀어나오곤 한다. 그럴 때면 아이와 함께 웃는다. 우리가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 주었던 ‘나’라는 표현을 우리는 사랑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지 마라. (닐스 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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