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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밀 Dec 28. 2021

내 아이가 비밀을 만들기 시작했다면…

육아 일상 속 철학이야기

아이가 비밀을 만들기 시작하면 부모는 걱정에 빠진다. 혹시라도 밖에서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닌지, 이상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 아닌지… 저러다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은 아닌지… 온갖 나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사람들이 왜 스스로를 포장하며 살아가는지’를 이해한다면 아이가 비밀을 만드는 이유도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영화 <완벽한 타인(2018)> 여러 가지 이유로 진실을 왜곡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린 이야기이다.

줄거리: 오랜만에 커플 모임을 가지게 된 주인공들은 재미있는 게임을 하기로 한다. 규칙은 간단하다. 식사시간 동안 핸드폰이 울리면, 문자와 통화내용을 모두 공개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그야말로 ‘판도라의 상자’였다. 각자의 가면 뒤에 감춰져 있던 이야기들이 드러났고, 혼란이 시작됐다.


우리는 스스로를 여러 겹으로 포장해놓고, 상대가 누구인지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며 살아간다. 거짓말까지는 아니더라도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위한다는 이유로 거짓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영화 속 이야기처럼 거창한 비밀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내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은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그래서 때때로 좋은 의도였든 나쁜 의도였든, 평소 잘 안다고 생각했던 상대가 나에게 숨기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크게 실망한다.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낯선 사람.. 완벽한 타인처럼 느껴진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말이다.




이런 일들은 비단 어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예외일 수는 없다. 나 또한 다양한 이유로 아이 앞에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대신, 가면을 쓰곤 한다.


“아이 앞에서 노골적인 돈 얘기는 좀…”

“어른들 사이의 일인데, 다 얘기해줄 필요는…”

“얘기해준다 한들 아직 이해 못 하겠지.”

“아이의 동심은 지켜줘야지…”

“하도 떼를 쓰니 살살 구슬리려면…”

아이도 자라면서 자신만의 가면을 여러 개 만들어 간다. 사회성 발달에 따른 당연한 결과일 테다. 복잡 다난한 인간관계를 잘 헤쳐나가려면 꼭 필요한 스킬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아이는… 어느새 부모의 닮은꼴이 되어간다.


“엄마한테 혼날까 봐…”

“어차피 엄마 아빠는 얘기해봤자 내 마음도 몰라주니까…”

“친구들이 나를 싫어할까 봐…”

“말씀 안 드리면 선생님도 그냥 넘어가실 테니까…”



다시 생각해보자. “내 배로 낳았는데도 속을 하나도 모르겠다.”며 서운해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낳았으니 내 아이를 다 알아야 한다(?) 알고 싶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아이는 그저 사회적 생존을 위해 나를 포함한 누군가로부터 ‘완벽한 타인’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그러했듯이.


악의적인 거짓말이 아닌 이상,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숨김이 아닌 이상은 괜찮다. 아이의 사회성 발달을, 자아의 성장을 믿고 응원해주자. 아이가 어떤 측면에 있어서는 나에게 ‘완벽한 타인’ 일 수도 있음을 이해하고 존중해주자.


인간의 마음은 빙산과 같다. 마음은 물 위에서 그것 자신의 크기의 7분의 1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지그문트 프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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