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져 있는 길을 가는 건지, 스스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서 살아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지만, 걸어가고 있다는 노랫말이 와닿아서 계속 반복해서 듣게 된다.
'엄마,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어요~라고 하는 아이에게
'누구나 한 가지는 잘하는 게 있어.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인 거야.'라고 이야기해주며 지금부터 고민하는 게 기특하다고 토닥여 주었었다.
나는 어땠었지? 지금의 나는 알고 있는 건가? 내가 가는 길이 어디로 향하는 건지 알고 가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문득 해보게 되었다.
어릴 적 꿈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왜? 어쩌다? 그런 꿈을 갖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마음에 TV에서 나온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멋져 보였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중학교 시절 동안은 꿈을 잠시 잊고 살기도 했었다. 그때는 지금 돌아보면 내가 무엇을 느끼고 살았는지 기억에 없는 빈 공간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사춘기여서 그랬으려나? 단지, 친한 친구가 첼로로 예고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나도 플루트로 예고를 가고 싶었더랬다. 철없는 나를 믿어주시고 그래도 한번 해보려무나 하고 플루트를 배우게 해 주신 부모님이 참 감사할 따름이다. 늦게 시작한 데다 그다지 재능도 없었던 딸이 상처를 받을까 봐 스스로 이 길이 아니라고 느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주셨다. 플루트에 대한 꿈을 취미로 남겨두고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고등학교 1학년, 이문과의 결정의 갈림길에서 나름 고민을 많이 한 끝에 미대를 가겠다고 결심했다. 어릴 적 꿈도 떠올랐던 것 같고, 유치원 때 대회에서 상을 받아봤었던 경험과 취미로 미술학원에 다녀보면서 그림에 대한 흥미를 느꼈던 것이 결정에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다. 미대 입시 준비를 늦게 시작한 만큼 나름 한눈팔지 않고 화실과 독서실을 오가며 매진했었고, 길을 정하고 나니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고 그저 열심히 했었다.
대학을 졸업 후 디자인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을 결심했고, 부모님의 도움으로 감사하게도 영국에서 진지하게 디자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영국 대학원의 분위기는 입학하자마자 디자이너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미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또는 병행하는 같은 동급생들 덕에 더 성장할 수 있었고, 디자인에 대해 언제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도 나의 창의력을 자극했었다.
그렇게 자유롭고 디자인 오리엔티드된 환경을 뒤로하고 졸업 후 귀국해서 입사한 첫 직장에 적응하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었다. 보수적인 회사였고 일도 무지 많았었는데, 일하는 방법은 철두철미하게 배울 수 있었다. 그때 했던 프로젝트 경험들이 사실 지금까지도 내가 밥 벌어먹고 살 수 있게 해 준 발판이 되어주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영국살이에 대한 향수가 몇 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그 그리움을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근근이 유지했었다. 디자인 제품도 작품처럼 전시를 하는 문화가 국내에서도 꽤 형성되어 있었고, 대학원 졸업작품으로 여러 전시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한국 대표작으로 뽑혀 지원을 받아 영국의 디자이너스 블록 전시에 도 참여할 수 있었는데, 그 핑계로 휴가를 내고 영국에 한번 더 갈 수 있었던 것이 더 좋았었던 시절이었다.
런던 디자이너스 블럭에서 전시했던 작품들 / Industrial Poetry by Gae Yeon Chang
Poetry back into design
“I focus my attention on the prosaic and the ugly which are usually ignored. By doing so I try to rediscover and reveal the valuable latent poetry that exists in ordinary life. “
시적인 관점으로 의자라는 오브제를 관찰해 보면 일상생활에서 그 숨겨진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의자는 사람들에게 앉을 무언가를 마련해 주기 위해 디자인된 오브제이지만,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의자는 그 본분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20대에 걸었던 길을 돌아보니 아득하지만, 가슴 뛰는 날들로 가득했었던 것을 생각하니 아직도 마음이 콩닥거린다.
'이게 몇만 년 만이에요?'
20대 후반 일에 푹 빠져 살던 우리는 이제 40대가 되어 다시 만났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났지만 서로 너무 잘 통했었던 우리,
서로 연애 이야기도 하고, 일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 소통하고 지냈었건만,
결혼과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먼발치에서만 서로의 소식만 듣고 있었다.
일로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지만, 일을 같이 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우리 일 말고, 그냥 만나요~' 하고, 그렇게 바로 날을 잡았다.
그동안 계속 해왔던 일은 이제는 맨날 하는 일이다보니 크게 애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걸어온 길이 고스란히 쌓여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돈이 안돼도, 정말 귀찮아도, 좀 새로운 요소가 있는 일을 하고 싶고, 의미가 있는 프로젝트일 때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게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구나 싶었다.
어쩌면 20대에 마음 콩닥거리는 것을 찾아 했던 것 같이, 그렇게 여전히, 결국은, 마음이 가는 데로 걷다 보면 웃을 수 있지 않을지.... 내가 그렇듯이 아이도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