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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네스장 Apr 16. 2021

고기병이라고요?

시어머니와 함께 삽니다.

아침부터 큰 목소리로 통화를 끝마치신 어머님이 거실로 나오셔서 이야기를 푸신다.

오늘의 이슈는 이모님이 감기 몸살이 났다는 것.

목소리를 깔며 진지하게 이모님이 몸살난 원인을 특유의 사투리로 말씀하시는데,


'생각히 보니, 고기를 못 먹어서 고기병이 나서 그런 거 같혀'


이모부가 살아 계셨을 때는 때마다 고기를 잘 사주셨고, 고기를 같이 먹으러 가 이모님이 다 드시고 나면 남은 것을 드시곤 했다며.... 그러다 그런 신랑이 없으니 고기를 못 얻어먹서 병이 났다는 이론을 펼치신다. 그리고 실제로 삼겹살을 드시고 나서 이제는 기운을 차리셨다는...  


전혀 앞뒤가 안 맞는 말을 너무나 진지하고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으니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챙겨주는 사람이 옆에 없어서, 아플 때면 고기를 사줬었던 사람이 그리웠을 법도 하셨겠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어머님이 말씀하신 고기병이란, 고기에 얽힌 사람에 대한 그리움까지 곁들여 있었던 것이라고 혼자 정의해본다.  


이모님의 고기병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어머님도 며칠 전부터 몸살기가 있어서 약을 드시며 버티셨다고... 얘기를 안 해서 그렇다고 이제야 토해내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이고아이고, 엄마야 나 죽겠다~"하고 투정을 부리는 아들에게, 어머님이 참다 참다 토해내신 것이다.


이제는 이모님이 고기병이 났다는 것이, 자식들이 고기를 안 사줘서 그랬다는 것으로 들린다.

이모님 이야기를 빗 데어, 몸살이 났는데 고기를 안 사줬다고 투정하시는 것일까?

어제는 분명 고기도 싫다고 하셨는데, 아리송한 어머님의 말씀에 그 의미를 전에는 잘 알아채지 못했었지만, 지금은 안다. 지금은 몸보신을 해 드려야 할 타이밍이라는 촉이 왔다.


결국 우리는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장어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어머님은,

'봄에는 (고기보다) 장어가 좋을 것 같아. 내 생각에'라고 하신다.

그냥 장어가 먹고 싶다고 하면 될 것을....

어머님은 고기를 사실 때도 항상  

'쟈~가 먹고 싶어 하잖냐?'며 손주 핑계, 아들 핑계를 데신다. 한 번도 본인이 먹고 싶어 산다고는 하지 않으신다.


날씨가 화창한 날 문산 장어집으로 드라이브를 가면서, 남편과 거기까지 가기로 결정하기까지의 어머니와 나눴던 대화와 그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어머님이 쓰시는 특유의 화법과 표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창밖 풍경을 보다가

'논두렁이 포롬 포롬 하다야~'

'아~따 꽃도 예쁘게 폈다~'


대구 사투리 베이스에 어머님이 만들어 쓰시는 것 같은 표현들이 있는데,

가끔 그 의미를 알듯 말 듯  하기도 하지만, 함축적으로 여러 의미를 맛깔나게 담고 있는 것도 있어서 하나씩 적어두기로 했다.


'데릉게 데릉게 한다' : 대롱대롱하는 모습

'쌔뜻한거': 새것 같으면서 산뜻한 것

'고운 거' : 무늬나 색깔이 밝고 여성스러운 것

'밥이 톡탁톡탁 거린다' : 뜸이 덜들 어 덜 퍼졌을 때

'희한하다' : 특이하다는 말 대신

'똘방 한 거' : 동그란 것

'사곰하다' : 약간 익어 새콤한 맛이 날 때


시집와서 어머님 아버님의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서 소통이 힘들었었다. 이제는 감으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고, 알쏭달쏭한 어머님의 돌려 말하는 의도 파악이 가능하다. 여전히 그냥 직접적으로 말해주시면 좋겠다고 바라보지만, 그냥 바람일 뿐인 것을 안다. 그때그때 잘 캐치해서 타이밍을 잘 잡는 것이 최선이다.


돌아오는 길엔, 코로나 전에 이탈리아로, 스위스로, 여기저기 같이 여행 갔던 이야기를 하시면서,

'음식은 뭣 같아도, 구경은 진쫘~ 좋았지!' 하신다.


이모님의 고기병을 핑계로, 장어로 몸과 마음까지도 든든히 채운듯한 모두가 만족한 나들이를 할 수 있었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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