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산이다

산린이의 겨울 등반

by 아네스장

햇살이 좋은 아침이다. 생각보다 많이 아프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 온몸이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할 것 같았는데, 가볍게 일어나 졌고, 약간의 뻐근함이 오히려 기분 좋게 한다. 열심히 오르고 내린 기억이 남아 있는 뻐근함이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됐고, 대체 운동으로 계단 오르기를 틈틈이 했었다. 짧은 시간에 숨 참을 느낄 수 있고 땀도 나는 계단 오르기는 효과적이긴 하나 그냥 운동이다. 자전거를 타면 경치도 보고 나들이 가는 듯한 효과를 동반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이 빠진 그냥 운동은 지루했다.


얼마 전부터 산에 가자고 준비를 하던 남편과 휴가일을 맞추고 드디어 등산을 하였다. 날씨가 추웠지만 올라가다 보면 괜찮겠지 하는 왕초보 산린이의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어쨌든 우리는 북한산에 갔다. 왕복 5시간 정도 소요된다던 코스에 대한 감이 전혀 없는 상태로 무작정 남편을 따라 올라갔다. 초반에 오른 길은 적당히 오르다 말다를 반복하여 많이 힘들지 않고 땀도 꽤 났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덕에 땀은 흐를 새가 없이 말랐고,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 배가 고팠다.


남편이 계획한 식사 장소는 아니었지만 먼저 김밥 한 줄을 까먹었다. 움직일 때 났던 땀이 멈춰있으니 순식간이 마르면서 김밥 한 줄을 먹는 동안 손이며 온몸이 싸늘해졌다. 쉬는 게 더 곤혹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래도 먹었다고 에너지가 생긴 것은 확실히 느껴졌다. 땀에 젖었던 장갑을 다시 끼니 한동안 손이 시렸다. 자전거 장갑은 겨울 산행에는 너무 얇았다. 역시 장비빨이야 하며 겨울 산행을 하려면 장비를 갖추던지 하지 말던지 둘 중 하나여야 할 것 같았다.


한참을 오르고 내리고 열심히 갔는데, 길을 찾기 힘들 정도로 돌로 덮인 지역이 나왔다. 해발 727m에 있는 문수봉으로 가는 길이었다. 초반에는 잘 올라갔고, 남편이 잘 간다고 칭찬도 해줬지만 중후반부터는 끝없는 오르막에 그 칭찬조차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힘들다고 진작에 얘길 해주지하는 괜한 후회도 올라왔다. 어쩔 수 없다. 왔으면 올라가고 내려가야 하는 것을. 거의 기어가다시피 올라간 문수봉의 경치는 앞서 올랐던 봉우리보다 훨씬 멋있었다. 첩첩이 겹쳐진 능선의 곡선과 원근감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저 멀리 남산이 보이고 한강물이 반짝이고 월드타워도 보였다. 그 높은 곳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배가 고픈지 애처롭게 울며 서성이는데, 김밥 두 줄과 작은 사이즈 컵라면 두 개만 달랑 챙겨 온 터라 고양이에게 줄만한 간식거리가 없었다. 실은 내가 더 배가 고팠다. 남편은 조금 더 가서 먹을 계획이라며..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햇빛이 비추는 곳이 있으니 거기 가서 먹자고 하였다. 그때가 벌써 2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문수봉을 지나서부터는 능선길을 따라가면 되는 길이어서 수월하였다. 그리고 멋진 북한산의 풍경을 계속 보면서 갈 수 있는 길이어서 더욱 좋았다. 이 길을 보여주려고 나와 꼭 같이 오고 싶었다고 하는 남편에게 고맙다고, 그런데 밥 좀 먹자고, 정말 배가 고프다고 얘기하다 보니 목적했던 대남문에 도착하였다.


겨울산행은 먹을 때 너무 서글펐다. 햇살이 좋았지만 바람이 간혹 불고 추워서 여유 있게 돗자리 피고 먹을 수 있는 날씨와는 대조적이었다. 싸늘하게 식은 김밥을 라면 국물에 적셔 먹어서 그나마 덜 차게 먹을 수 있었다. 먹고 일어나는데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진 느낌이 들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내려가 할 것 같은 조급함도 밀려왔다. 먹었지만 배가 반만 찬 듯하고, 따뜻한 음식이 생각이 절실 해졌다. 대성문을 찍고 내려오는 길은 수월한 편이었다. 다 내려와서 국립공원 입출구를 봤을 때 기쁨이 문수봉을 올랐을 때의 기쁨보다 컸다면 너무 하려나? 그런데 정말 너무 기뻤다. 무사히 내려와서. 산을 이 정도면 못 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날씨가 춥지만 않았으면 좋았겠다 싶다.


하계휴가일을 동계 극기훈련으로 마무리한 이날 이후로 겨울산에 또 오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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