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리운 할머니 김 복순 여사님

마주 한국일보 샌프란시스코 판 여성의 창 칼럼.



아빠는 열 여섯에 시집을 가셨던 할머니 김 복순 여사께서 마흔이 넘어 낳으신 다섯째, 막내이시다.
아이가 안 생기는 옆집 새댁이 딱해 절에 가 함께 백일 불공을 드리셨는데 아이는 할머니만 낳으셨다.  

그 귀한 아들과 결혼한 우리 엄마에 대한 할머니의 애정은 각별했다.
할머니께 독하게 시집살이를 하고 계셨던 두분 큰 어머니들이 막내 새댁의 군기를 잡아보려 했다가 되려 할머니께 야단만 맞으셨다는 얘기를 큰어머니께 몇번이나 들었었다.
여자가 시집가면 평생 물리도록 해야하는게 살림이니 결혼전엔 아무것도 하지말라며 키우신 외할머니덕에 엄마는 늦게까지 살림이 서투르셨었다.

내가 어릴때 할머니께서 가끔 막내 아들집에 다니러 오실때는 오시자 마자 몸빼 바지로 갈아입으시고는 집안 서랍 하나하나를 다 열어 정리를 하시기 시작하셨다.
큰 아버지 댁에서는 손 하나 꼼짝 안하시는분께서 “아이고야. 우째 살림을 이래 추접게 하고사노”를 주문처럼 중얼거리시며 집 정리와 청소를 시작하시면 엄마는 그렇게 잔소리 하실거면 치우지 마시라며 배짱을 부리고 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한번 흘겨보시고는 부엌 싱크 안까지 깔끔하게 치워주셨다.
그리고 퇴근하고 오신 아빠께서  “어무이, 대구탕이 묵고싶네” 하시면 “끼리주까? 라시며 부엌으로 가셔서 대구탕 이라 불리는 대구식 육개장을 끓이기 시작하셨다.
할머니가 고기와 무를 수저로 냄비에 볶을때 나던 달가닥 소리는 지금도 꼭 음악 소리처럼 내게 남아있다..

식사가 끝나면 어김없이 동생과 함께 맥주 다섯병 심부름을 했다.
한병을 두분이 나눠드신 아빠와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시는 노래를 서너번 부르시고나면 금새 잠이 드셨고 나머지 네병을 혼자 다 드신 할머니는 내 옆에 누우셔서 “내 열여섯때 일이다..내 열 여덟때 일이다..”하시며 당신 어릴때 일들을 옛날 이야기 해주시듯 들려주셨었다.
“공부가 그래 하고싶었는데 여자라꼬 핵교를 안보내줬다카이. "하는 할머니 옛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곤했다.
다음날 큰 아버지께서 모시러 오시기 전 참빗으로 곱게 빗은 머리를 똘똘 말아 은비녀를 꽂으시고 한복으로 곱게 갈아입으시고는 당부하시는 한마디.
“느그 큰 어매한텐 할매가 아무것도 안했다 카래이”.

엄하셨지만 따뜻했던 우리 할머니.
돌아가신지 삼십년이 되가는데 여전히 그립고 또 그립다.
가끔 정리가 안된 내 집을 보고있자면 할머니 음성이 들리는듯하다. “야야. 이래 집을 추접게 하고 살아 우야노”








작가의 이전글 아직도 자라고 있는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