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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빛 세상

세상 종말의 날인가요

늦잠을 잤다.

두 번이나 울리는 알람을 꺼버린지도 모르고 자다가 어머나 하며 눈을 떴다.

이상하게 어둑한 창밖이 누랬다.

무슨 일이야 하며 내다보니 세상이 핑크빛이다.

무거운 핑크빛이었다.


일단 아이를 깨우고 아침을 차려내며 뉴스를 검색해 봤다.

orange sky가 어쩌고 저쩌고, apocalyptic sky가 어쩌고 저쩌고...

요는, 멀리 멘도시노 숲과 시에라 숲 쪽에서 난 불 연기층이 샌프란시스코 베이 쪽으로 날아오면서 햇빛을 차단하고 있다나 뭐라나...


붉은 하늘이 열리고 당장 U.F.O 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지진이 나면서 이 동네에 있지도 않은 화산 같은 것도 폭발해줄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아침을 먹으러 내려온 작은 아이도 이게 무슨 일이냐 하고 잠을 못 자 피곤하다고 툴툴대며 내려오는 큰 아이도 하늘 좀 보라고 호들갑.


아이러니하게 이런 하늘임에도 공기질은 다른 날 보다 훨씬 좋다 하는데 잠깐 나가본 마당에 재가 싸라기눈처럼 내리고 있었다.


지층 공기가 움직이지 않고 연기층을 이고 있어서 공기 질은 good이라고 오후에 연기 냄새가 나면 창문 바로 닫아~~~라고 기사가 나왔다.


아는 이들의 SNS에는 저마다 찍어댄 붉은 하늘 사진으로 가득했고 무거운 핑크빛 하늘이 주는 중압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우울함을 가져다줬다.


아이들은 수업이라고 방으로 올라가고 혼자 우두커니 창밖을 보고 앉아있자니 마당에서 핑크빛 하늘을 이고 있는 분홍 장미가 보였다.

나가서 사진을 찍으며 ‘이 와중에 예쁘고 난리야’ 혼자 툴툴거렸다.

이렇게 두려운 날임에도 마당의 장미는 예쁘게 피어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생각했다.

“한국에 이런 색 꽃 그림이 있는 뮤럴 벽지가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예전에 남편이 집에 온 외국인 친구에게  ‘내 와이프 취미는 걱정을 만들어서 하는 거야. 심지어 어떤 건 일어날 가능성이 0%야’라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 대답이 ‘same as my wife. ‘ 였던 기억이...  

어둡고 붉은 하늘을 보며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날 것임을,
코로나처럼 산불처럼 인간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자연재해가 더 많이 생길 것임을 , 더워진 지구가 만들어낼 분노가 더 커질 것임을, 인간이 저지른 여러 잘못으로 인한 환경 파괴의 책임을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이 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사람의 활동에 점점 더 제약이 많아질 것임을,
언젠가는 영화 속 세상처럼 땅속으로 피해 들어가 살 수도 있음을, 마스크가 아닌 헬멧 같은 것을 쓰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영화에서 처럼 사람이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을 찾아 노아의 방주 같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생각을, 생각이 비약으로...
비약이 상상으로, 상상이 또 걱정으로.... 혼자 머릿속으로 SF 영화를 찍다가...

쓸데없는 걱정임을 깨닫고 커피 한잔을 내렸다.


불이 약하게 켜진 연극 무대처럼 비현실 적으로 보이는 붉은 마당을 내다보며 즐기는 커피타임.
걱정해도 소용없고
두렵다 웅크릴 일도 아니고.
시간만이 해결해 주겠지 하며.

에잇!! 아이 수업 끝나면 청소를 해야겠다 했는데 오늘은 그만 쉬라는 듯 Air quality index가 올라갔다.

공기질이 안 좋아진다는 신호.

청소는 공기가 좋아지는 날 하는 걸로.
그래서 그냥 커피 한잔 마시며 탱자 탱자 놀아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저 하늘도, 전염병으로 인해 변해버린 생활도 제자리로 돌아가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더 이상 우울해지지 않게 잘 참고 기다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불은 그만 났으면 좋겠다.

비가 와야 꺼지는 캘리포니아 산불들.

비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큰일이다.

어쩌면 비 보다 산타가 더 먼저 올 수도 있는데...

비가 좀 일찍 내려주면 참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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