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또 다른 이름, 가족 그리고 일
'장애인' 하면 흔히 어려서부터 장애를 지닌 선천적인 장애를 떠올린다. 이와 달리,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경우를 '중도장애'라 하는데, 의외로 대부분의 장애는 중도장애이다. 누구나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사망률이 줄면서 예전 같으면 사망했을 환자들이 장애를 지니고 살아남는 확률이 높아지기도 했다.
중도장애를 갖게 된 이들의 경우, 장애로 인해 잃어버린 기능들에 따라 바뀐 삶의 질과 방향도 달라진다. 그들에게 가족은 희망의 우선적인 통로이다. 그로나 희망을 찾는 과정은 사람들의 상황과 성향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만약 중도장애를 입은 이가 가장이라면 그는 가능한 직업활동, 혹은 가족 내 역할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도 한다.
교통사고로 중도장애를 입은 40대 가장 두 분을 비슷한 시기에 환자로 만난 적이 있다. 전신미바의 가능성이 큰 상태였던 환자들이었다. 몇 달의 입원기간 동안 두 환자는 다행히 휠체어에 앉아 상체를 고정하고 손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다.
A 씨는 자신의 사업체를 꾸려온 분이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자녀들도 독립할 준비가 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는 퇴원 후 휠체어를 타고는 회사에 출근하지 못했다. 영업을 해야 하는 일이라 직접 관리할 수 없었다. 다행히 믿을 만한 직원이 있고 부인도 도울 수 있어서 사업체는 무난히 유지되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힘으로 일궈온 사업체와 가정 내에서 자신의 역할이 없어진 듯해 괴로웠다. 아내와 자녀들의 정서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휠체어를 계속 타야만 하는 영구장애가 남은 A 씨는 치열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잃었다.
퇴원 후 외래진료 때마다 A 씨는 우울해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무기력함을 호소했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자신이 구심점이라 믿었던 생활이 바뀌었다. 그런데 가족들의 삶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A 씨가 바뀐 건강상태에 잘 적응하는 것뿐이었다. 완벽해 보이는 환경 속에서 A 씨는 자신만 멈추어 있다고 느꼈다. 보이지 않는 소외감에 시달리다 우울증을 앓았다. 지속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A 씨의 우울증은 조금씩 심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A 씨는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마음 아픈 결말이었다.
또 다른 환자 B 씨는 비슷한 나이였다. 이 분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B 씨 가족은 교통사고 보상을 충분히 받지 못해 오랜 치료를 감당하느라 경제적인 곤란을 겪었다. 다행히 장애인등록 후 임대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다.
이 분에게도 자녀와 부인이 있었다. 가족에게 새로운 생계유지 수단이 필요했다. 환자는 상담을 통해 직업재활의 방향을 찾았다. 혼자서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훈련을 마치고 퇴원한 후 B 씨는 전에 있던 직장과 유사한 직종에 취업했다. 손으로 기기를 점검하고 제어하고, 신입직원과 연수생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환자는 가족을 챙길 수 있어서 감사해했다.
이 분에게는 장애가 남았을 망정 살아남았고, 부족하나마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것이 삶의 동력이 되었다. 책임져야 할 가족들, 어떻게든 일을 찾고 가정을 유지해야 했던 힘든 시간이 장애를 빨리 받아들이고 적응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이 되었지만, B 씨에게는 상체라도 움직일 수 있고,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조건이 감사한 일이었다.
중도장애를 입은 환자들은 다양한 환경과 상황에서 장애를 받아들이고 삶을 리모델링해야 한다.
두 케이스를 보면서, 때로 사람에게 필요한 희망은 결핍을 채우는 과정에서 자라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A 씨의 외부적인 조건에는 큰 결핍이 없었다. 자신이 하던 일을 놓게 된 것 외에는. 가장이 장애를 입었어도 가족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고, 자신의 자리만 없어진 현실이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만약 A 씨에게 새로운 사회적 역할이 주어졌다면 그분은 계속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B 씨는 이십 년 가까이 해옸던 일을 놓았지만, 남아있는 적은 가능성을 찾아 재취업에 성공했다. 경제적인 안정도 부족하고 자녀들도 어렸지만 일을 통해 희망을 찾았다.
가족 내 역할의 재정립과, 자신이 갖게 된 장애를 얼마나 빨리 받아들였느냐의 차이로 재활과정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던 두 분이라 오래 기억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장애 없이 살아가는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정말 감사하고 소중한 기적의 하루가 아닐 수 없다.
*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직업이나 가족상황은 일부 생략, 각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