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잡은 손

작은 신호 하나

by 온현

사회복지사는 어떤 상황에서든 삶의 희망을 건져 올리려는 사람이다.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먼저 작은 신호 하나를 찾는다. 눈에 쉽게 보이지 않지만 클라이언트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희망의 조각 하나. 그 신호를 깨닫는 순간 가뭄에 물꼬가 트인 논밭처럼 메마른 관계가 살아나기 시작하기도 한다. 오래전, 그렇게 살아난 한 가정을 본 적이 있다.


그날의 클라이언트는 부부갈등으로 자살을 기도한 주부였다. 생명의 위기를 벗어난 후 퇴원 전에 위기개입을 이유로 의뢰된 환자였다. 2박 3일의 짧은 시간 동안 부인, 남편, 부부상담까지 집중적으로 상담해야 했던 케이스였다.


평소 열정적이고 외향적인 부인에 비해 남편은 과묵했다. 문제가 생기면 대화시도를 했지만 남편은 갈등이 좁혀지지 않으면 자리를 피했다. 처음에는 방으로, 나중에는 집밖으로. 아내는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바로 풀고 싶었지만 남편은 싸움이 될까 걱정해 대응하는 말이 줄었다. 의견충돌이 생길 때마다 남편과의 대화는 더 자주 단절되어 갔다.


어느 날 자녀의 교육문제로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서로 짜증을 내다가 다툼이 되었다. 그날의 다툼은 꽤 커졌고 남편은 평소처럼 하던 말을 멈추고 집을 나갔다. 평소처럼 아내의 화가 풀린 후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날 아내는 만취상태에서 약을 먹었다.

새벽에 돌아온 남편이 놀라 119를 불렀고 부인은 간신히 살아났다. 아이들이 있고 10여 년간 살아온 부부였지만 부인은 죽으려 했고 남편은 부인의 화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지쳤었다고 했다.


이 부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각각 개인상담을 했을 때 남편은 부인이 우울증이 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아내는 입원한 자신 곁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남편에게서 서툴게 전해지는 마음을 보았다.


부부상담을 위해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났을 때, 처음엔 어색해하던 부부는 자녀 이야기가 나오자 서로를 쳐다보았다. 부부는 상담 도중 부모의 잦은 다툼에 자녀가 받았을 충격을 이야기하자 자신들도 모르게 손을 맞잡았다. 그 잡은 손을 보는 순간, 문제해결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부부에겐 자녀를 양육하기 위한 공동의 연대의식이 작은 돌파구였다.




부부는 그동안 초등학생밖에 안 된 큰 아이에게 부모의 다투을 중재하는 역할을 많이 맡긴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서로 손을 잡고 바라보는 모습이야말로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의 신호였다.

마지막 부부상담에서 손을 잡은 부부는 상담을 마쳤을 때 쑥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다.


며칠 전 자살하려 한 사람과 그 사람을 간신히 살린 배우자가 서로를 향해 웃는 것이 이상했을까?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저 작은 방향타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동안 남편은 아내와 다투다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무시당하는 기분으로 전해진다는 것을 몰랐고, 아내는 남편이 다투고 싶지 않아 자리를 피한 것이었음을 몰랐던 것이다. 오해가 풀리자 문제가 다시 보였다.


작은 균열도 쌓이면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반대로 큰 갈등처럼 보여도 작은 신호 하나를 잘 붙잡으면 관계가 살아나기도 한다. 이 부부의 맞잡은 손이나 서로를 향한 쑥스러운 눈웃음 같은 것들.


부부와 자녀들은 이후 거주지 인근 종합사회복지관의 무료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부모로서 함께 상처받은 자녀들을 돌아보게 되면서 가족들대화가 달라졌다.


잦은 부부싸움과 서로에 대한 이해부족이 자칫 한 가족을 해체할 뻔한 사건은 그렇게 해결되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벽이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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