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30일
"에이씨, 뭐가 먼저여? 응? 대수송이여, 이 드런 놈의 괴질이여?"
연말연시 대국민 수송 기간. 운송을 담당하는 액세스 공사에 연말 휴일이란 없다. 예년과 변함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는 송과장에게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中, 원인불명 폐렴 급증이라. 운송사업자는 국민 안전에 요주의라아~"
소회의실에서 쪽잠을 자고 나와 새벽부터 심기에 거슬리는 공문 한 장을 받아 들고는 양반댁 한량마냥 뒤뚱건들 슬리퍼발을 끌며 애먼 공중에 귀엽게도 자그마한 분노를 흩뿌리는 것이다.
"이건 뭐 어쩌라는 거여, 응? 사업을 하라고 말라고. 맥락이 읍어. 사스 때도, 메르스 때도 쌩난리를 치더니 잠깐 그러다 말 거, 으이그, 징그럽게, 응? 지침도 읍고, 말만 무성~허니."
거슬리기는 강사원도 마찬가지다. 지난 발령 이후 거의 모든 실무를 떠안은 채로 연말을 맞았다. 이전 기관에서의 악몽이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밤잠도 설쳤는데 저 작고 뒤뚱거리는 과장이 자꾸만 뒤를 오가며 먼지를 일으키는 것이다. 송과장이 손에 든 종이가 펄럭일 때마다 생기는 묘한 생활취에 비위가 상한다. 정대리 없이 뻥 뚫린 공간이 이리도 불편할 줄이야. 정대리라는 방벽이 아쉬워지는 포인트다.
"우리 미리씨는 지금 뭐해에?"
저것은 단지 실무자의 업무 파악이 안 돼서 하는 질문이다. 능력 없는 상사의 필살기. 애초에 본인 일 말고는 처의 업무 분장 따위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다. 가증스럽다.
"네. 사심위, 통계, 회의 자료 하고 있습니다."
"어이구 그래 셋이 하던 거 혼자 다 쳐내내. 역시 미리씨고, 응? 쉽지? 거 미리씨한텐 일도 아닌 거 뭐, 응?"
'이 자식이...'
목젖을 꾹 눌러 분노가 터져나오려는 목구멍을 막고는 한껏 호두무늬 턱을 해보인다. 조물조물 입모양으로 가볍게 시옷 비읍을 흘려본다. 일회용 마스크로 하관을 가리고 출근한 본인을 조용히 칭찬한다.
"감기?"
"네?"
"마스크. 내가 얼마나, 응? 우리 처 막내들한테 관심이 많은데. 거 몸조심 혀. 중국에 괴질이 돈다자녀, 응?"
'그럼 너도 마스크 좀 하고 다니든가.' 대신 "넵."으로 응수한 강사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봤자 별나다며 핀잔이나 들을 게 분명하다. 이런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정대리가 겪은 불편함이 일초에 한 번씩 심장을 터치한다. 미치겠다. 말투도, 자세도, 눈빛도, 대화 소재도. 불쾌하다. 호감형 인간이 아닌 상사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에너지를 빨아들인다. 출근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방전된 기분이다. 밀려드는 일 때문에 자리를 피할 수도 없다.
이 불편함은 송과장도 마찬가지였다. 정대리와는 다른 차가움. 애초에 강사원의 경력도, 눈빛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다. 정대리에 비하면 붙임성이 없고 상냥하지도 않다. 막내답지 않은 강사원의 눈빛에서 매일 서늘함을 느끼고 있는 와중이다. 옷은 또 왜 항상 무채색만 입는건지. 저 석불 같은 중고신입이 퍽 신경 쓰인다.
'타닥타닥타닥.'
타자음이 공중에 치솟아 회오리를 형성할 무렵, 송과장은 불편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뜨기로 한다. 고정 업무가 없는 자는 비교적 자유로운 법이다. 어딜 떠돌아야 잘 떠돌았다는 소리를 들을지 고민하며 강사원이 일으키는 날카로운 회오리를 슥 스쳐지나다 무어라도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은 충동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연다.
"거, 언제까지 젊지 않어, 응?"
순간 타자음이 멈추고 회오리가 되감기 하듯 강사원의 손으로 빨려 들어간다. 적막이 감돈다.
'뭐라는 거지?'
당혹 그 자체인 강사원이다. 송과장도 본인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잘 모르겠는 눈치다. 영문 모를 발언으로 시작된 애매한 멈춤이 마치 이 시기의 고속도로 같다. 꽉 막힌 공기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자 진공 상태가 된 듯 모든 움직임이 멎는다.
"...네?"
고개를 돌려 살짝 숙인 듯 올려드는 강사원이 의구와 의심의 눈초리로 두 발짝 떨어져 선 송과장의 뒷모습에 작은 토를 단다. 안타깝게도 이 작은 시도는 공기의 흐름을 깨지는 못했다.
"..."
본인도 무얼 어찌 커버해야 할지 모르겠는 송과장은 뒤돌아 서있는 것이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혹시 내가 실수하지는 않았나, 방금 꺼낸 이야기가 무수한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씨앗을 품고 있지는 않았나, 저 철저하고 영민한 중고신입이 상시 녹음기를 켜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폭풍처럼 알고리즘을 돌리며 눈동자를 굴려 주위를 살핀다. 다행히 재무와 인사는 사람이 없고, 저 멀리 사공과 영업 사람들이 제 일에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진공 상태가 풀리더니 반쯤 고개만 돌려 중얼대는 송과장이다.
"아니, 좀 웃자고. 응? 거, 뭐, 그거여. 내가 진급을 시킬 순 없지만 진급이 안 되게 할 수는 있다이."
송과장은 하마터면 식은땀이 흐를 뻔한 바싹 마른 폴로셔츠를 매만지며 앞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찾아 쏜살같이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저 멀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담배 한 개비가 걸린 소시지 손가락을 주시하던 강사원은 뒤늦게 진공상태에서 해제된다. 그러더니 새 창을 띄워 낮은 타자음으로 바삐 검색을 시작하는 것이다.
"...여깄다."
그룹웨어를 급히 뒤져 찾아낸 것은 클래식한 디자인의 흔한 공기업용 알림 배너였다.
'액세스 광역 신문고 - 참지 마세요. 감사실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2019년 12월 30일 월요일 흐림
<전략처 송과장> 에이씨, 껄끄럽게
에이, 아니겄지? 뭐, 예에~민한 열다섯 소녀도 아니고... 아닐거고? 응? 경력이 몇 갠데, 아닐거여. 뭐 까놓고 내가 뭐 희롱을 했어 뭘 했어? 하도 막막허니 분위기가 얼음장 같어서 분위기 풀어보자고 던진 거고. 그렇지, 응. 친교, 친화 뭐 그런 거. 휴일이라 증인이 읍네. 에이씨, 저거 또 과민반응하고 그러는 거 아녀? 걔처럼... 그... 박... 미연인가 미순인가 뭐 그 쬐깐한 꼬맹이. 결국 관둘 거 다닐 사람 시간만 잡아먹고 말여. 지는 잠깐 다니지만 나는 이게 생업이란 말여. 평생직장이고 말고.
<전략처 강사원> 개버릇 남 못 준다더니
보아하니 뚫린 입이어서 그냥 터져 나온 잡소리. 전 기관에서도 사건이 있었고 여기 와서도 사람 하나 직장 잃게 했다면서. 아직도 그 버릇을 못 고쳤으면 이제 그만 퇴직하셔야... 감사실에 동기가 없어 다행이네. 무슨 일 있으면 부담 없이 걸고넘어져도 되겠어.
<티에프팀 정대리> ...
이 종이쪼가리 한 장이. 내. 새로운 일. 참. 더러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