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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한해달 Aug 29. 2022

2020년 3월 16일

 "으이구, 회사가 멈췄구먼, 멈췄어."


 부문장 단체 직위해제 발령 이후 회사가 멈췄다. 뉴스에 날 정도로 크게 터지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사실상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비위 연루자들의 직위해제다. 직무 대행들은 제 부문장이 돌아올 때까지 원래 하던 일만 하며 버티기로 정했다. 같은 돈 받으며 금방 돌아올 놈들 뒤치다꺼리를 해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이곳, 기재부문은 달랐다. 기부문장만큼은 강전부문장의 잔재를 청산하고 새 팀을 꾸리기에 여념이 없다. 묘하게 파가 나뉘었다. 기부문장과 강주임, 송수석과 이책임. 기부문장은 현장 노조에서 추진하는 경력 재산정 이슈를 공론화해 강주임을 끼워 넣어 강책임으로 만들 심산이다. 두 갈래로 나누어진 기재부문의 골은 서서히 깊어지고 있었다.


 "강대리, 아니, 강책임, 회의 자료 오타 있더라. 잘 하자."

 "강책임, 쏭수석한테 가서 국산화 R&D 자료 좀 달라 그래."

 "강책임, 이사회 연락됐어?"

 "강책임!"


 이책임은 말끝마다 강책임을 연발하는 기부문장 탓에 베알이 꼴린다. 과장을 달기 위해 영업 시절부터 송수석에게 비벼왔다. 그 비굴한 나날을 딛고 일어서 아버지 같은 한수석을 떠나와 겨우 과장 달았더니 새 사장이라는 놈이 들어와서는 책임제를 들고 나서 과장과 대리 구분을 없애버렸다. 그러더니 이제는 새 부문장이 등장해 아랫 주임을 책임으로 끌어올린단다. 이책임 입장에서는 빡침 포인트가 한두 개가 아니다. 옆자리 신입이 나보다 큰 기관에서 일했었고, 경력 또한 길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억울하다. 


 강주임은 강주임대로 억울하다. 굳이 신입으로 이직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전 기관에서 털릴 만큼 털려봤다. 강주임은 주임인 지금이 좋다. 막내의 서러움 정도는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새 공기업에 입사했더니 전 기관 상사들이 빽빽이도 들어서있다. 입사하자마자 강대리라 불러대는 통에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더니 이제와서는 억지로 경력재산정을 받게해 책임으로 끌어올린단다. 책임 달아놓고 또 무슨 일을 시키려는 것인가. 이기적인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건 아니다. 억울하다.


 "담배 한 대 태우고 오겠습니다."


 기부문장에게 짧게 보고하고는 이책임 뒤를 지나며 어깨를 툭 치고 빠지는 송수석이다. 이책임은 기부분장을 바라보지도 않고 바로 몸을 돌려 일어서더니 송수석과 함께 사무실에서 모습을 감춘다. 여느 때처럼 둘만의 담배타임이다. 강주임은 이맘때면 편한 마음으로 커피도 한 잔 사오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기부문장이 남아있다. 비위에 휘말린 탓인지 도통 모습을 보이지 않던 강부문장과 달리 기부문장은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팃, 팃, 팃.'


 이책임 책상 위의 탁상시계가 묘하게 띠꺼운 소리로 초를 밟고 옮겨 간다. 뿌연 적막이 기부문장과 강주임 사이의 거리를 채운다. 그때도 그랬었다. 전 직장 상사와 단둘이 남은 탓인지 이전 기관에서의 기억이 불현듯 끼어든다. 그날의 기억이 급작스레 회오리쳐 기분 나쁘게 후두부를 헤집는다.


 "직장인을 해도 되는 사람, 안 되는 사람이 있는 거거든."


 기부문장 뒤쪽으로 큰 원을 그리며 등장한 쏭이다. 큽 하고 된미소를 짓는 기부문장을 지나 송수석 의자를 자연스럽게 꺼내 앉는다. 손페달을 당겨 너무 높은 의자를 바닥으로 깔아놓고는 길다란 손가락으로 모니터의 네 끝을 어루만진다. 대단한 화가가 첫 획을 긋기 전 캔버스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는 듯하다. 강주임의 회오리는 쏭의 등장으로 소리소문 없이 가라앉았다. 그 대신 신경이 곤두선다.

 

 "인마, 사람 없을 때 남의 자리에 그렇게 앉는 거 아냐."

 "응? 잘 안 들리는데? 누구 자리라고?"


 능청을 떨며 송수석 자리를 스캔하고 이책임의 자리로 옮겨 앉은 쏭은 의자를 굴려 강주임에게로 다가간다.


 "이렇게나 젊고 능력 있는 사람인데."


 불편하다. 이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강주임은 차라리 나도 담배를 피울걸 생각하며 여드름이라도 난 듯 불편한 엉덩이를 조금씩 뒤틀어본다. 그러한 낌새를 모르지 않는 쏭은 언제나처럼 제 말을 이어간다.


 "200받아 150 버리는 젊음을 보내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사람인데, 그치?" 


 강주임은 대답을 기다리는 듯 꼼짝 않고 응시하는 커다란 수석을 무시해야 할지 웃어넘겨야 할지 고민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한 마디를 보탠다.


 "저는 비용이니까요."


 쏭은 '요거 봐라.' 하는 심산으로 강주임 방향으로 자세를 아주 틀어 두 팔꿈치를 무릎에 괴고는 긴 상체를 굽힌다. '으음'하고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애교 섞인 비음을 뿜어낸다. 쏭은 강주임과의 주고받음이 내심 재미가 있다.


 "그런 말을 스스로 하는 거?"

 "모든 대가성 급여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

 "아뇨, 열정은 소분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강주임은 강직구를 던져놓고는 모니터만 응시하며 옆몸으로 공기를 감지하려 애쓴다. 쏭의 무서움은 공기로 전혀 파악이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자니 땀이 한 방울 옆귀로 흐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강주임의 목이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이 여자는 지금 어디를 보고 있을까? 표정은 어떨까? 다음 말은 뭘까? 생각이 꼬리를 문다.


 "만만찮지?"

 "그러네 형, 쟤도 되게 재밌다?"


 힐끗 보니 이미 강주임 곁을 떠난 쏭은 기부문장과의 대화에 열중하고 있다. 혼자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부끄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다. 쏭수석은 버거운 사람이다. 강주임은 그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쏭브로, 그 건은 도면도 같이 줘. 우리 이책임은 일 하나도 모른다. 국토부 보고 들어갈거라 도면도 볼 줄 알아야 되는데 큰일이다, 에휴."

 

 알았다는 듯 대충 손을 들어 손등으로 인사하고는 멀어지는 쏭이다. 그러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방향을 틀어 강주임에게로 다가간다. 기부문장의 눈도 그를 좇는다.


 "야, 직장인 좋은 점이 뭔지 알아?"


 오늘 유독 거대한 쏭은 강주임에게만큼은 무심히 상냥하다.


 "쥐뿔 암것도 없으면서 비용을 키워도 되거든." 


 쏭은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기고는 기재부문 앞의 정수기를 툭 건드리더니 이내 자세를 바로잡고 왼편 끝의 시관부문로 향한다. 성큼성큼 오른쪽 부서들을 지나며 들으라는 듯 공중에 제법 큰 소리를 분사하며.


 "기왕들 할 거면 적성에라도 맞아야지. 덜 힘든 거 좋아하거든, 나는."  




2020년 3월 16일 월요일 맑음


<기재부문 기부문장> 제자리 찾아야지

 불쌍한 내 새끼들 내가 챙겨야지. 챙길 때도 됐지. 강짱돌이처럼만 안 하면 되는 거니까. 인간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만 지키면 되는 거란 말이지. 챙김이라는 게 어떤 건지 보여줄테니 잘 봐둬, 강짱돌이. 우리 아리 묵은 원한도 좀 풀어주고 미리 제자리도 찾고. 그것만 하면 나는 여기서 할 건 다 한 거라고.   



<기재부문 강주임> 상대에게도 안 좋지만 내게 더 안 좋은 버릇

 나 같은 사람은 직장 생활을 하면 안된다. 암적인 존재가 되어버린다. 저 사람도 마찬가지다. 냄새도 동작 하나하나도 모두 기억나는 그날 일이 여전히 똬리를 틀고 뇌 속에 틀어박혀 있다. 아마도 저 사람은 나보다 몇 배는 더 좋은 기억력을 가졌을 것이다. 냄새가 난다. 한을 생산하는 나 같은 사람의 냄새가.


<영업관리부문 한수석> 대리 줬으니 과장 데려와야지

 그놈은 언제까지 저기 가서 천덕꾸러기 노릇 하고있을 건지. 내 그렇게 야망을 갖지 말라고 말을 해줘도... 내 밑에 있을 때부터 엇나갈 놈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뭐, 다 필요 없고 나도 내 새끼는 찾아다 놔야 마음이 편하다 이거야. 공자 붙은 데서 빌어먹고 사는 인생 야망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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