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마흔셋. 그 순간이 커피다

핸드드립 좋아하세요?

by 선량한해달

「커피빵이 예쁘네」


‘커피빵이 예쁘네, 오늘은 운이 좋을 것 같아.’


내가 커피에 빠져들기 시작한 건 3년 전.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과연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가야 할 미래가 있기는 한지 심리적인 방황기를 거치며

나를 지탱해줄 자극적인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이제 더 이상 비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때까지 나를 지탱해주던 홍차를 더는

즐길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

차를 우려내는 과정을 즐길 수 있으려면

커피밖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막대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커피라는 긍지 높은 음료는 불명예스럽게도

홍차의 대타로 내 인생에 편입되었다.


새벽 4시.

굽은 손가락을 스트레칭하며 드리퍼에 필터를 걸친다.

끓인 물을 약간 식혀 필터를 적셔주며 온기를 머금게 한다.


대충 던져 넣었더니 약간의 우글거림이 신경 쓰이지만

빠른 카페인 충전을 위해 그 정도는 못 본 걸로 하기로….


신선한 산미에 부드러운 질감의 에티오피아 콩이 좋을지

자극적이고 고소한 원산지 불명의 강배전 콩이 좋을지

3초 정도 고민을 한다.

저렴하게 구입한 자동 그라인더에 강배전한 원두를 세 스푼.


다시 올린 물이 적당히 끓을 무렵 드립하기 좋을 정도로

갈린 원두가 필터 위에 오른다.


평평하게 위치를 잘 잡은 원두를 보며 마음속으로 한 마디.

‘얘들아 좀 뜨겁다.’


한 바퀴 조용히 두른 물에 몽글몽글 피어오르더니

이내 부글거리며 걸쭉한 용암 같은 커피빵이 부푼다.


‘성공!’


안도의 얕은 숨을 내쉬고 뜸이 드는 동안

잠시 내 방으로 돌아온다.

이제 내게 주어진 시간은 10분이다.


마무리 채색을 마치고 나면 아주

근사한 커피를 마시게 될 것이다.


커피빵이 예쁜 걸 보니 오늘 하루도 운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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