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조
어릴 적에 우리 엄마는 우리와 함께 홍콩 영화를 보곤 하셨다.
그 당시는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다 보았는데,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황비홍'시리즈.
절제된 동작으로 통쾌하게 악의 무리를 물리치는 그.
우리 삼 남매가 넋을 놓고 보고 있으면, 어느새 엄마가 옆에 같이 와 계셨다. 늘 집안일에 바빠 보이던 엄마가 그때만큼은 할 일을 미뤄두고 자리에 함께 있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언제나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행복한 것이니.
홍콩 무술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유치한 몸개그와 속 시원한 복수, 엄마는 우리보다 더 크게 웃었고 더 통쾌해하셨다.
엄마는 엄청 어른 같았는데, 어른이라고 꼭 뉴스만 보는 것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한 동안은 서로 장난하며 무술을 하곤 했다.
신혼 때 꿈을 꿨다.
신혼여행지였던 호주의 어느 쇼핑몰을 구경하다가, 언제나 꿈은 이상하듯, 인형이 아니라 사자새끼 한 마리와 호랑이 새끼 한 마리를 내 주머니에 넣었다. 강아지처럼 귀엽고 깜찍해서 맹수라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손으로 덥석 잡아 올렸다. 사자면 사자, 호랑이면 호랑이지 왜 한 마리씩 넣었는지도 모르겠고 옷에 갑자기 주머니가 갑자기 생겨난 것도 재밌었다. 배경이 캥거루의 나라여서 그랬나?
우습게도 잠에서 깨어나 '내가 딸만 둘 낳으려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땐 매일 임신을 기다렸으니까 그랬겠지? 내가 그 꿈을 왜 그렇게 연결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후로 이상하리만큼 딸만 둘을 낳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로 2년이 다 돼서야 첫째가 찾아왔고, 둘째까지 모두 딸이었다.
친구들은 신기하다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확신해서인지 난 당연하다 여겼다.
딸 둘.
둘이 약속이나 한 듯이 첫째는 생후 21일째 난소탈장을 발견했고 (기저귀 갈다가 발견) 49일째 전신마취 후 수술을 했다.
둘째도 생후 2개월에 심장내과를 다녔다. 한 번 울면 배꼽을 중심으로 얼굴부터 배꼽까지 몸이 보라색이 되었다. 닫혀있어야 할 심장 판막이상 가능성을 두고 한 동안 진료를 보았고 이후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딸들은 신생아 때까지는 참 힘들게 키웠는데, 유아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나와 함께 3인조 흥부자가 되어갔다. 설거지할 때 듣는 음악이 바로 엄마의 감정 바로미터라는 것을 아는 듯이 어떤 날은 조용히 다가와 날 안아주었고, 어떤 날은 함께 엉덩이 춤을 추었다.
평범한 날, 기분 좋은 날 듣는 음악.
춤을 추고 싶은 날은 영국밴드 Keane 'everybody's changing.'로 시작해서 온갖 댄스곡 메들리.
부부싸움하고 화나는 날엔 서태지와 아이들 '필승'을 시작으로 1집 무한반복. 혼자서 HOT '전사의 후예' 춤을 추기도 했다. 고무장갑을 낀 채로...
생리하기 전 감성이 충만한 때는 잔나비, 아이유, 이문세, 토이, 김동률로 이어지는 발라드.
애들이 커가면서 이런 나만의 BGM에 아가들의 음악이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린이 동요와 뽀로로, 아기상어, 포니테일, 토마스와 친구들 등 아이들 음악으로 채워져 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이들을 씻기 기 전 한참을 댄스파티를 했다.
마치 오늘도 지지고 볶고 잘 보냈다~!! 하는 마무리 의식이었달까?
애나 어른이나 본능이 리듬을 타고 흔드는 막춤이다. 마사이족 저리 가라 하는 스카이콩콩 춤.
애들이 크면서 같이 보던 드라마 OST '슬의생' '아로하', '싹쓸이 _다시 여기 바닷가'를 떼창 한다. 노래방 가서 서로 마이크를 쥐고 부르겠다고 쟁탈전에 젖 먹던 힘을 다 쓰곤 한다.
딸들과 함께하는 노래, 댄스 그리고 우리끼리 하는 패션쇼, 콩트까지 참 재밌는 모녀 3인조.
우리 우정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