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말한다.

네가 보고 싶을 거라고

by 아궁이

살다 보면 한 번씩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2000년이니까 25년 전 이야기이다.

간호학과 실습 기간 대부분은 종합병원의 여러 과를 돌며 현장 실습과 주제 연구를 했는데, 모든 학생이 모든 과를 경험할 수는 없었다. 어떤 과는 실습을 할 수 있는 학생이 제한되어 있었다.


정신과 실습 주간이었는데, 데이케어센터에서 카페에서 환자와 함께 활동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그때만 해도 정신과 하면 폐쇄병동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무방비상태에서 환자에게 갑자기 맞지는 않을까, 간호사 선배님들은 냉혈인들처럼 너무 차갑지 않을까… 여러 선입견과 두려움이 뒤섞여 실습 전날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게 실습 첫날, 병원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다.

실습했던 병원은 전국의 많은 환자들이 오는 정신병원이었고 가톨릭 재단에 소속된 병원이어서 신부님과 수녀님도 자주 보였다.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훨씬 따뜻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내가 가진 걱정은 온전히 '선입견' 그 자체였다.

정신도 육신처럼 병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정신이 아픈 사람들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나의 도움을 기다리는 약하고 여린 사람들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 임무는 <기준>이라는 이름의 아저씨 환자와 함께 카페에서 헤이즐럿 커피를 내려 판매하는 일이었다.


이 환자는 등산을 하다 높은 곳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하지 마비가 되었고, 기적적으로 재활이 되어 한쪽 팔을 못쓰는 것 외에 활동은 가능했다. 다만, 그때 다치면서 머리에도 충격이 있어 실어증을 앓았고 치료를 통해 조금씩 회복 중이며 오랜 우울증으로 대인을 기피한다고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실습을 온 간호학생 000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

역시 인계받은 대로 반응은 없었고 표정은 거의 무표정.

대답이 없어도 실없는 농담도 던지고 쉬지 않고 말을 걸었다.

그러다 보면 한 번씩은 "말이 많네..." 하며 땅을 보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2주 동안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커피를 내리고, 햇살 좋은 창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참 좋았다. 병원에서는 쉴 틈 없이 뛰어다니며 노트 필기하기 바빴는데, 아침마다 헤이즐럿 향도 따뜻한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카페 분위기도 여유롭고 너무나 편안했다.


이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외부인은 거의 없었고 데이케어센터를 이용하는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환자와 의료진 모두 사복을 입었기 때문에 누가 환자고 누가 의사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커피를 사러 와서 인사를 할 때까지는 전혀 환자 같지 않았지만, 자기소개가 길어지면서 30분 넘게 나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영문학 교수 출신이라고 하며 영어로만 말하는 환자도 있었고, 자기가 아랍의 왕자이자 한국에서 변호사였다고 말하는 환자도 있었다. 한국어 억양이 완전한 한국인이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대화를 나누며 나는 혼란스러워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담당 간호사 선생님이 지나가며 조용히 말해주셨다.

"환자들 이야기에 말리면 안 돼요."

그래도 나는 마음으로나마 그분들이 건강해지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듣는 그 시간들이 좋았다.


오전에는 커피를 판매하고 오후에는 기준 아저씨와 카페 한 구석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물론 대부분은 나의 일방적인 말이었고, 아저씨는 간간히 웃어 보이거나, 조용히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정도였다.

그 아저씨와 나란히 앉아 창밖을 보며 이야기 나누던 햇살 좋던 그 오후가 생각난다.

오늘 이삿짐을 싸다 정말 오랜만에, 그때 기준 아저씨가 내게 준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그래서 더 선명하게 그날이 떠오른다.

정신과 실습.jpg

실습을 마치던 마지막날 무덤덤히 전해주던 그 종이.

이렇게 긴 글이 딱 한 문장이었다는 사실.

그동안 입을 열지 않으셨지만, 서운한 그 마음을 끝없이 표현한 것 같아 코끝이 찡해졌다.


말을 하지 못해도 이렇게 마음은 말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감동적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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