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가
아이야
스무살의 엄마는,
시골에서 도시로 옮겨와
어른의 시선 밖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완전한 자유' 속에서
선택의 시험대에 처음 놓였단다.
그때 엄마는 자유를 아무 때나 나갈 수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로만 착각했다.
하지만, 배움이 엄마에게 알려주었지.
사람이 자기 시간과 몸을 함부로 쓰는 순간,
그 사용 내역은 반드시 계산서의 형태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가야 할 곳을 먼저 가고, 가고 싶은 곳은 나중에
먹어야 할 것을 먼저 먹고, 먹고 싶은 것은 나중에
봐야 할 곳을 먼저 보고, 보고 싶은 곳은 나중에
말해야 할 것을 먼저 말하고, 말하고 싶은 것은 나중에
들어야 할 말을 먼저 듣고, 듣고 싶은 말은 나중에
읽어야 할 책을 먼저 읽고, 읽고 싶은 책은 나중에
잡아야 할 것을 먼저 잡고, 잡고 싶은 것은 나중에
잃어야 할 것을 먼저 잃고, 얻고 싶은 것은 나중에
배워야 할 것을 먼저 배우고, 배우고 싶은 것은 나중에
비워야 할 것을 먼저 비우고, 채우고 싶은 것은 나중에
써야 할 것을 먼저 쓰고, 쓰고 싶은 것은 나중에
줘야 할 것을 먼저 주고, 주고 싶은 것은 나중에
이해할 것을 먼저 이해하고, 이해시키고 싶은 것은 나중에
한마디로, 해야 할 것을 먼저 하고,
하고 싶은 것은 나중에
전자는 의무, 후자는 권리
전자는 대가, 후자는 보상
전자는 구속, 후자는 자유
전자는 필수, 후자는 선택
나는 간단히 전자는 계산서 후자는 영수증 이라 부른다.
계산서가 쌓이면 부채가, 영수증이 쌓이면 여유가.
계산서가 쌓이면 악순환, 영수증이 쌓이면 선순환.
계산서가 쌓이면 쫒기는 삶, 영수증이 쌓이면 여유있는 삶.
계산서가 쌓이면 예측불가한 삶, 영수증이 쌓이면 대안있는 삶.
계산서가 쌓이면 과거에 머무르는 삶,
영수증이 쌓이면 미래를 향하는 삶.
계산서가 쌓이면 해야할 일이 남아있는 삶,
영수증이 쌓이면 하고 싶은 것들이 남아있는 삶.
이러한 원리는 결코 거꾸로 가서는 안된다. 아니, 갈 수 없다.
순서대로 가면 영수증이 쌓이고 역으로 가면 계산서만 가득하다.
이치는, 원리는 순리에 따라 정해진 길로만 가기 때문이다. '
-김주원, 감정이 각도를 잃으면 정신은 온도를 잃는다, 건율원
아이야. 엄마는 이 개념을 배운 후 부터
삶은 늘 순서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하고 싶은 건 뒤로 두고,
해야 할 것을 먼저 하는 사람만이 질서를 가지게 된다는....
할 일을 미루면 삶이 나를 쫓아오고,
할 일을 먼저 감당하면 삶이 오히려 나를 지켜준다는 원리를 말이야.
엄마는 충동을 넘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법을 몰랐구나.
삶의 질서를 세울줄 몰랐구나.
엄마는 그 시절,
자유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모든 것을 흥청망청 써버렸단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는 건
아무도 대신 계산서를 내주지 않는다는 뜻이었단걸
미루어진 영수증은 반드시 대가로 징수되고 있다는 걸 몰랐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해야할 일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둔
제때 감당하지 못한 선택들은 결국 엄마를 다시 불러세웠다.
작은 문제 였던 것들이 하나둘 불어나
어느날 갑자기 한꺼번에 청구서처럼 밀려오는 순리를 삶은 가르쳐줬었지.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학교 2학년 반에 들어가 공부해야 했던 그 날처럼.
싸우기 싫다는 이유로, 분위기 깨지 않으려고,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넘기며 오히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지’라고 스스로를 묵인하며 설득하며 지낸 날들이
계산서로 쌓여 예상치못한순간
놀림과 꾸중, 상처
그동안의 후회까지 전부 함께 따라붙었어.
엄마는 한때
기분이 좋으면 지갑을 열고
속상하면 술을 마시는
감정이 기준이 된 선택들이
합리적 선택처럼 왜곡되어 살았단다.
순간의 충동에 따른 기분에 의존해 내린 선택은
당장은 찰나의 위안을 주었지만
엄마의 미래의 시간을 붙잡아 묶어버렸지. ....
엄마는 세상과 멀어진게 아니라
엄마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있구나 .
아이야,
감정이 행동을 끌고 간 순간의 쾌락은
엄마 자신의 미래의 시간을 담보로 얻은 빚이란걸 알게 되었단다.
순간의 감정으로 흔들린 선택들,
그 감정의 선택으로 쌓은 계산서 여전히 쌓여 있음을 계산해보았어.
그 빚을 갚으며 엄마는 아마 오래 걸려 제·자·리를 찾아 가겠지.
길고도 무거운 시간이란다.
감당하지 못하고 ‘때’를 놓친, 그 ‘때’가
가슴에 못을 박는 듯한 무서운 댓가로 값을 요구 하고 있다는 것도
엄마는 인정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지금,
도망치치 않고, 핑계 짓지 않고, 그 동안 미뤄둔 빛을 정리하며
삶을 다시 제.자.리에 세우는 중이란다.
이 과정은 고되지만,
엄마의 삶은 예전보다 더 단단한 방식으로
다시 바로 세우는 힘이 된다는 사실도
배웠단다.
아이야.
감정이 결정을 흔드는 순간에 충동이 튀어 오를 때는
판단을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게 넘겨라.
감정은 순간이자만
이성은 그 순간을 해석하며 전체를 본단다.
기억해라.
삶의 댓가는 정확하단다.
세월은 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 무게 그대로 돌려줘.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의 무게에 맞는 결과로 돌아온단다.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그 보상을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를 줄 알아야 한다.
<보도섀퍼, 멜탈의 연금술> 17장 지금 자신의 일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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