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존중이 공존하는 스위스 농장
가축에게 이름을 붙여 더불어 삶아가는 삶이란?
치즈의 나라답게 스위스 농부들은 대부분 젖소를 키워요. 평균적으로 농장마다 40~45마리 정도 소를 키우는데, 그중에서 소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농장이 꽤 많아요. 제가 방문한 5곳 중 3곳의 농장에서는 소들을 이름으로 부르더라고요. 마을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한 젖소 농장에서는 78마리의 소들에게 각기 다른 이름을 붙여줬어요. 이렇듯 스위스 농부들은 가축에게 애정을 쏟으며 키워요. 가축을 단순히 가축으로만 보지 않고 가족의 일환으로 여기며 보살펴요.
스위스 농부들은 무엇보다 소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요. 그들이 제일 많이 노력하는 부분은 바로 방목이에요. 대부분의 농장이 Bio(유기농) 인증을 받아 운영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의무적으로 소들이 하루 4시간씩 들판에서 뛰어놀 수 있도록 해요. 소뿐만 아니라 염소, 양, 닭 등 다른 가축도 마찬가지로 주로 방목을 해요. 겨울이 아니라면 스위스 들판 곳곳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동물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스위스에서 소를 키우는 농부들은 각자의 농장 환경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해요. 그래서 어떤 농장을 방문하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어요. 어느 농장은 여름 내내 들판으로 가는 문을 열어두기도 하고요. 인공수정 없이 100% 자연임신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기도 해요. 동물들이 먹이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주기도 하고요. 스위스 농부들은 동물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요.
그래서 그런지 스위스에서 사는 모든 소들은 사람을 경계하지 않아요. 우리나라 한우농장에 가면 소들이 사람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봐요. 가까이 다가가면 뒷걸음질 치고요. 그래서 소들은 사람을 무서워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스위스에 가보니 소들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갇혀 살다 보니 예민해진 것임을 알게 됐죠. 항상 같은 장소에 머물러 지내다 보니 낯선 요소가 생기면 경계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스위스에서 살아가는 소들은 사람이 옆에 다가와도 눈길조차 주지 않아요. 사람이 다가와도 신경 쓰지 않는 거죠. 가끔 송아지들은 다가와 꺼끌꺼끌한 혀로 핥아주기도 하지만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에서야 비로소 가축들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도 마찬가지로 자유로움이 행복을 만들어 주잖아요. 하지만 우리나라 지역 특성상 가축을 방목해 키우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동물복지를 우선으로 하는 문화도 충분히 자리 잡혀 있지 않아서 농장이 관련된 민원을 감당할 수도 없고요. 그래도 우리는 가축들이 살아가는 동안만이라도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가축은 우리를 위해 살아가는 동물이잖아요. 그러니까 농장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동물복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소비자의 인식부터 변화되어야 해요. 소비자가 동물복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구매를 한다면 농장은 이에 맞춰 바뀔 수밖에 없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