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게을러서 걸리는 병인지 묻는다면

우울증 이야기 (1)

by 돌만두


나는 난치성 우울증과 ADHD가 있다. 사실 전자의 무게감이 너무 커서 후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살 때가 많다. 그럼 맨날 우울한 거냐고? 아니. 멀쩡히 출근하는 일상이 있는가 싶으면 저녁 밥상을 차고 나타나는 것이 우울삽화이다. 운동은 해 봤냐고? 취미는 러닝이고 주3회 정도 한다. 그 전엔 웨이트를 했었다. 그럼 왜 난치인가? 다양한 약을 잡곡밥으로 먹어봤지만 그만 먹어도 될만한 상태가 안 돼서 그렇다.



먹던 약을 증량해도 좋아지지 않으면 약을 바꿨다. 바꾼 약이 듣기를 기다리며 2주, 약발이 부작용을 이길 때까지 한 달, 먹던 약으로 돌아가느라 한 달, 증량이 효과가 있는지 기다리는 한 달, 이렇게 약물을 조정하며 살다 보면 일 년이 훌쩍 지나간다. 약을 바꾸는 기간에 특히 기분이 불안정했던 기억이 난다. 이것도 안 들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으로 앞날이 캄캄했다. 보이는 것은 어두워서 익숙한 곳, 색은 같지만 모양은 제각각인 문장. 너무 검어서 나의 생각도 염색시킨 버젓한 문장. 죽어야 끝난다. 거기서 살아 돌아온 나는 또다시 약을 바꾸면서 그 우물을 쳐다보지 말라 한다.



솔직히 말하면 근 5년간은 기억이 잘 안 난다. 기억하려고 하면 지나간 세월이 안 좋은 똥처럼 둥둥 뜬다. 정신병에 걸리면 시간관념이 이상해진다. 어제가 오늘 같고, 1년 전이 어제 같고, 3년 전 일과 1년 전 일을 헷갈리곤 한다. 지금이 그렇다. 진단받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 뭐 하나도 기억나는 게 없다. 설명할 수도 없다. 거울을 봐도 모른다. 병원 가서 엑스레이 찍고 피검사를 해도 모른다. 음성 양성도 없고, 위치도 형태도 없고 시작도 끝도 없다. 입에서 느껴지는 맛을 남이 느끼게 할 수 없듯이, 나를 포함한 이 세상 누구도 얘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 병은 본인이 정신과에 가서 약봉투를 들고 나오기 전까지는 없는 병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좌표 없는 통증이고, 한계 없는 부식이다. 환자의 일상은 서로 비슷하지 않다. 단 하루도 같지 않다. 이 병을 잘 모르고 말하는 사람들의 지레짐작처럼, 인생의 ‘소소한 행복’이나 ‘가슴 뛰는 일’을 찾지 못해서, 일상이 너무 안온하고 지루해서 걸리는 병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이 편해서’ 걸리는 병이라는 딱지는 또 어떤가. 사실 나도 비슷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체력이 이기는지 우울이 이기는지 시험해 보려고 물류센터에서 투잡을 했다. 새벽 네 시 반에 일어나서 냉동창고에 들어가는 짓을 2년 넘게 했는데 안 나아졌다. 무섭고 지겨운 병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우울증이 ‘SNS를 많이 해서’, ‘집에만 있어서’ 걸린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너도 한번 똑같이 걸려보라는 저주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젠 업보가 두려워서라도 할 수 없는 말이다. 그 시간을 거쳐 온 나는 절대로, 누구도 이 아픔을 겪지 않길 바란다.



나는 아직도 가족을 비롯한 이 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이상한 상태인지 설명하기 위해 적절한 묘사를 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있다. 그러나 영원히 제대로 묘사할 수는 없으리라 예상한다. 말했듯 그 통증은 하루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나에게 우울이라는 것은 왼팔과 오른팔 사이 꺼내져 있는 수박만 한 장기처럼 느껴진다. 너무 가까워서 관찰할 수 없는, 그것은 피 없는 점막이며 내 숨을 타고 서늘하게 맥동하는 시간이다. 서로를 버리려고 하다간 과다출혈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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