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이야기 (4)
과도하게 내 얘길 하는 버릇이 있다. 뭐든 먼저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감정적 경계를 매번 쉽게 무너뜨린다. 과도한 만큼의 개인정보를 공유하거나, 친하지도 않으면서 트라우마를 털어놓거나, 민감한 주제를 거리낌 없이 말해버린다. 이게 ADHD의 충동성이라던가 부주의, 부족한 전두엽 기능 때문이라는 이유를 알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진단을 받고 3년 차쯤이었다.
불리하게 될 상황에서도 자신에 대한 정보를 과도하게 공유하는 것은 언어적 실금처럼 느껴진다. 도대체 어떤 업보를 치르기 위해 이 병을 달고 태어난 걸까? 로또에 당첨되는 운명은 어떤 운명이고, 기질적으로 실언을 하는 운명은 어떻게 다를까? 그게 아니면 왜지? 회복 탄력성이 부족해서? 유년기 트라우마가 있어서? 모자란 자기 효능감? 애정결핍? 그냥 노력부족? 진단으로 설명되는 만큼의 병증은 그간 해먹은 실수들과 등가교환되지 못한다. 이 억울함은 우울함과 닮아 있다.
되돌아보니, 나는 경험의 재전달을 일종의 처리방식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뒤틀린 과거를 스스로 이해하려는 모습이다. 거기에 과도한 진정성 추구를 하는 기질이 겹쳐있다. 깊은 유대감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상대와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하면 기억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쓸데없는 정보를 발설하게 되는데, 이런 습관은 술 먹고 하는 게임에선 강할 순 있지만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너무 많은 것을 말한 대가로 상처받고 고립되는 것, 이게 너무 오래되면 타인을 신뢰하는 능력이 완전히 망가지기도 한다. 상대방은 그냥 얘기하는 건데, 악의적이거나 화난 어조가 아닌데, 왜 이렇게 끔찍한 기분을 느끼는 것인지. 마치 옷깃을 스쳤는데 뺨을 맞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다 얼떨결에 어른이 되었고, 자신의 경계를 전달하는 것도 어른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경계선이 필요하고, 알고 있는 전부를 말할 필요는 없으며 묻지 않은 얘기는 안 하는 게 좋다는 그런 것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애진작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허탈했다. 자기이해를 회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내 탓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탓을 필요 이상으로 하면 우울해진다.
상담사는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들과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그 당시엔 상당한 수준의 자책감에 빠져있었는데,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나 자신이므로 결국 내 육체를 떠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다음 상담에 가서 이 극단적인 생각을 관철시켰다. 답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였다. 당장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수치심과 후회는 어쩔 수 없지만, 그 감정이 어떤 경로로 흘러갈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문현답이었다.
어떤 실수가 불러오는 인생종말의 예감이 오기 전에, 그 고통으로 불안에 몸부림치기 전에, 실수로부터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사건과 생각과 믿음을 가만히 두고 분리하는 시간을 거치는 것이다. 그러면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실수가 남고, 보이지 않아 두려웠던 걱정들과 직면할 수 있다. 나와의 거리를 지켜낼 때 타인과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특정한 상황에서 과한 개인정보를 발설하는 것은 어떤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방어기제나 생존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말하기는 내가 어려움을 공유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알고, 타인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는 종종 사회적 가면을 벗고 어울리고 그 안에서 안전하다는 욕구를 느끼고 싶어 한다. 자기표현 욕구는 당연한 것이기에 누구나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다만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감각이 있다면 좀 더 건강한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바운더리를 지킨다고 진실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경계는 불편한 것이 아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안식은 스스로의 인정에서 온다. 중요한 것은 좋든 싫든 이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질이 사회적으로든 일상적으로든 분명한 제약을 가져온다는 자각이 어떤 책이나 진단보다 더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장애가 있다는 것을 매번 알아차리는 일.
하지만 나를 취약하게 하지 않기 위해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좀 슬프고 찝찝하긴 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조차 사랑할 줄 알아야겠다. 내일은 나를 좀 더 이해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