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너무 솔직한 것도 죄다
참으로 오랜만에 썸이 생겼다. 글 쓰고 그림을 그리느라 방에서 칩거 생활을 주로 하고 있는 나에게는 진짜 오랜만에 ‘남자’와 만날 일이 생긴 것이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분과는 잘 되지 않았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같이 전시를 보러 가는 모임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인맥이 넓지 못한 나는 문토라는 동호회 앱을 이용해 가끔 사람들을 만난다. 드로잉 모임에 나가서 즐겁게 그림도 그려 보았고, 글쓰기 모임에 참여해서 꾸준히 글을 썼으며, 독서 모임에 나가 열띤 토의를 하곤 했다. 그러나 문토를 이용해 전시 모임에 나가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문토 앱을 살펴보다가 까르띠에 전시를 같이 보고, 함께 닭한마리를 먹자는 글을 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닭한마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러나 요새 내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먹은 적이 없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무척 식도락가 같지만, 어쨌든 나는 ‘메뉴’에 꽂혀서 모임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래, 솔직히 말해 전시는 뒷전이었다.
그런데 막상 나가려니 겁이 났다. 용감하게 신청한 것은 좋았지만, 요즘 세상이 몹시 흉흉하여 과연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닭한마리라는 마니악한 메뉴선정 때문인지, 한동안 아무도 모임 신청을 하지 않았다. 잘못하면 모르는 남자랑 단둘이 닭한마리를 먹게 생겼다. 모임 전날 모임장님이 내게 사람들이 더 오지 않더라도 만날 것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밥은 조금 부담스러우니 카페에 가자고 했다. 나는 정말 정말 정말 닭한마리를 먹고 싶었지만, 두려움이 식욕을 이겼다. 모임장님은 흔쾌히 OK를 했다. 그리고 다행이게도, 닭한마리가 카페로 바뀌자 마법 같이 사람들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석이조였다. 그렇게 총 4명이 까르띠에 전시를 보러 가게 되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까르띠에는 명품 보석 브랜드이다. 나에게는 생소한 분야였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고, 그 때문에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명화 전시에는 혼자나 친구들, 지인들과 함께 자주 갔었다. 하지만 이 기회에 내 예술적 저변을 넓히는 것도 좋겠지. 그림에서는 오지 않는 새로운 영감을 받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막상 가보니 전시는 별천지였다. 아름다운 보석들이 너무나 많았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지만 어차피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 소유욕이 일지는 않았다.
나를 제외한 모임원들 중에 한 분은 여성분이셨고 나머지 두 분은 남자분이었다. 그중 모임장님은 목소리가 매우 작고 말수가 적지만 유머러스한 분이었다. 뒤풀이로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눌 때, 모임장님이 얘기할 때마다 다들 그분 쪽으로 몸을 기울여 가며 들어야 할 정도였다. 굳이 그분의 목소리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뒤에 ‘썸붕’이 일어난 결정적인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임을 잘 마치고 들어왔다. 겁낼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휴! 그리고 며칠 뒤 모임장님이 영화를 보러 갈 테냐고 물어왔다. 사실 우리는 전시 모임 대화방에서 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단둘이서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그만큼 내적 친밀도가 쌓인 상태였다. 그런데 볼만한 영화가 없었다. 내가 영화를 찾아보느라 답변을 미루는 동안, 그분은 속이 좀 상하신 듯했다. 영화 보러 갈 거냐는 물음에 내 답이 없었으니 싫은가 보다 하고 오해를 하셨던 것이다. 나는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한 뒤 함께 한강 산책을 가기로 했다. 데이트 맞냐고 했더니 그분이 데이트 맞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남자와 데이트를 하게 된 것이다. 그분께선 전화를 하자고 했다. 이때부터 매우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귀가 좀 안 좋았다. 귀가 먹은 건 아닌데, 이어폰으로 음악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원래부터 좀 사오정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이 분은 목소리가 참 작았다. 그리고 통화 음질 때문인지 그분의 발음이 좀 불분명했다. “뭐라고요?”를 한 열 번은 했나 싶다. 아마 내 생각이지만, 이 분은 그 상황이 좀 속상하셨던 듯싶다. 내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안 듣고 있다고 여기셨을지도 모른다. 전화를 끊은 뒤, 내게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겠다는 카톡을 보내셨다. 나도 기분이 좀 상해서 그분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아마 그분께 다른 이유가 있으셨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추측하기로는 그게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문자를 통해 이야기하거나 직접 대면했을 때에는 아무 문제 없이 잘 대화했으니 말이다. 이게 나의 슬픈 이야기의 전부다. 나는 솔직히 기분이 굉장히 많이 상하지는 않았다. 전화하면서 나 또한 어쩌면 우리는 잘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왜 누군가와 관계를 오래 지속하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 오래까지도 아니다.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나는 남자와 일주일 이상 사귄 적이 없으니 말이다. 반면에 나는 친구들과의 관계는 제법 잘 맺는 편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는 감각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생각해 보면, 연인관계에서 나는 항상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받는 것을 더 원했다. 내 모든 것을 알고도 받아줄 수 있는 사람, 나를 품어 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내가 연애를 한 기간이 길지 않아서, 더 연애에 환상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연애에 환상을 지니고 있는 것이 원인이 되어 내 연애 기간이 길지 않았을 것이다. 악순환인지도. 어찌 됐든 간에 오늘, 그 사람과의 짧은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생각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은 ‘없다’고. ‘내 모든 걸 알고도 영원히 사랑해 줄 사람’은 없는 것이다. 신은 몰라도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남자는, 내게 큰 결함이 있다는 걸 발견하면 한때 사랑했다가도 사랑이 식을 수 있는 그런 존재일 뿐이다. 언제까지나, 누구를 만나든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에 빠져 결혼한 부부들은 언제까지나 행복해야 할 것 아닌가. 사랑이 식어서 고민하는 부부들은 없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잉꼬부부는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사랑의 흔적도 남지 않아 괴로워하는 부부들은 많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사오정처럼 “뭐라고요?”를 반복한 결과, 나의 오래간만의 썸이 돌이킬 수 없이 깨지지 않았는가. 결국, 나의 ‘완전한 사랑’에 대한 환상은, 환상일 뿐이다. 그것에 집착하면 할수록, 나만 괴로워질 것이다. 서로의 사랑이 흩어지지 않게 감출 것을 감추는 것은 기만이 아니라 예의일 수도 있다.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한다고 하는 사이좋은 잉꼬부부조차도, 진짜로 ‘모든 걸 다’ 이야기하진 않을 것이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남녀 간의 사랑은 결코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분명, 소중하다. 그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대하기 위해서, 영원은 아니지만 되도록 오래 지속하기 위해서, 서로 간의 약간의 내숭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 사람과 전화할 때, 전혀 들리지 않았어도 “아, 그렇구나~”라는 말을 해주었다면, 나의 썸은 붕괴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무 솔직한 것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죄다.
-202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