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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람 May 15. 2024

삐걱이는 청춘의 시간

나와 세상의 균형점을 찾는다는 것

죄송하지만 조금 우울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20대 때, 나는 솔직히 말해 사람이 좀 두려웠었다. 고등학교 때 상처를 받은 것이 졸업을 하고 나서도 계속 이어져 내려왔던 것이다. 사람이 두려운 것 외에도 자주 우울해서 혼자서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정말 세상이 회색이었다. 무지개조차 회색이었다. 무언가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나와는 아무런 감정적인 연결이 없는 그 느낌을 여러분은 부디 모르시길 바란다. 내가 모든 게 회색이었다고 하면, 간혹 그게 진짜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냥 웃고 만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을 덧붙여 주면서. 


뭐, 이렇게 길게 적어놨지만, 나도 괜히 오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떻게 보면 그런 시기를 안 겪은 사람이 더 적을 것이다. 오늘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나처럼 사람이 두려운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람 앞에서 조금 움츠러들게 된 기억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어쨌든 내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검은 캡모자를 푹 눌러쓰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인 채 지하철을 타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모두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었다. 많이 무섭고 외로웠었다.

     

어찌 보면 그건 청춘의 증거였을 수도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아프니까 환자다’라고 바꿔 부르며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꿈과 포부는 하늘 끝까지 높은데, 사람들의 대우와 나 자신의 실력은 가장 바닥일 때다. 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는 나의 모습을 꿈꾸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그렇게 대접해 주지 않았다. 그 사실에 한없이 절망했었다. 그래서 더 우울했고 더 사람이 무서워졌다. 어떻게 사람을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게 청춘의 진실이고 아픔이라고 생각한다.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것. 균형점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 물론 청춘이 아픈 이유에는 요즘의 잘못된 교육과 제도 등, 사회적인 요소가 없다곤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편의상 B라고 부르겠다. B를 만난 건 동화 일러스트를 가르치는 한 학원에서였다. B는 모 대학 애니메이션 학과에 휴학 중이었다. 졸업 과제로 그림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학원에 등록했다고 했다. B는 성격이 꽤 밝았다. 애교가 있는 편이기도 했다. 하지만 B는 모두의 관심과 애정을 받고 싶어 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이 어두워졌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행동을 많이 했다. 수업의 반은 빠지거나 늦었고, 남들의 그림을 거리낌 없이 보면서도 자신의 그림은 보여주기 싫어했으며, 다 같이 사용하는 물품을 혼자만 독차지하고 썼다. 얼핏 보면 이기적이라고 보일 법한 행동이었다. 나는 천방지축 B가 귀여우면서도 미웠다. “도대체 쟤는 왜 저러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해가 갔다.      


내가 생각하기에 B가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잘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B는 사랑받고 싶었지만, 스스로를 사랑받을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다. 그러니 자꾸 더 사랑받기 위해 사람들 눈에 띄는 극적인 행동을 벌였던 것이다. 그때는 이렇게 명확하게 생각한 적은 없지만 사람들은 함께 생활하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게 있다. 그래서 B를 생각하면 밉기도 했고 귀엽기도 했지만 좀 안쓰러웠다. 일부러 밝은 척 하지만 마음에 상처가 많은 B가 안타까웠다.      


그런데 어느 날, B가 이렇게 말했다.      


“언니처럼 예민한 사람들은 나랑 맞지 않아요. 하나하나 다 신경 써줘야 하는 느낌이라고요! 언니에겐 언니와 친할 만한 다른 사람이 있을 거예요. 나는 내버려 둬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예민하다고? 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B는 자신 또한 예민하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학원 수업이 끝난 후에도 다들 남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찰나였다. 모두 듣고 있는데 이렇게 직접적이고 원색적인 비난이라니? 내가 잠시 넋을 놓고 있을 즈음, 계속 말로 공격이 들어왔다. 그래, 나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예의를 갖춘 사람은 배려해 주지만, 이런 상황에조차 참을 수는 없었다. 사실 나의 어린 시절 별명은 ‘따순이’였다. 하도 따진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요새 다른 사람과 다툰 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전투 모드를 ON시켰다.      


길고 길었던 대화가 끝이 났다. 학원에 다니는 언니가 나보고 “잘 싸웠다”고 했다. 조금 뿌듯했던 건 비밀이다. 그 이후 나는 한동안 B를 무시했다. B는 자신도 조금 미안한지 계속 내 앞에서 쩔쩔맸다. 그러다가 다시 극적으로 화해를 하게 되었지만, B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나에 대한 비난이 가득한 B의 문자로 하루를 시작한 적도 있다. B는 나에게 좀 잘해주다가도 다시 얼토당토 않은 비난을 했다. 내가 진짜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가끔 현타가 올 정도였다. 내가 요즘 많이 단단해져서 그렇지, 내가 예전처럼 마음이 약했다면 B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B가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고, 짜증이 나는 건 짜증이 나는 거다. 나는 성자도 아니고 천사도 아니다. 한낱 매 순간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다. 어느 날 너무나도 화가 치밀은 나는 B에게 잘못한 점을 알려주고 앞으로 잘되길 바란다는 응원의 문자를 보낸 뒤 연락처를 차단해 버렸다.      


말했듯 나는 성자도 천사도 아니다. 그 애를 차단한 건 지금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중한 존재고, 계속해서 내 탓을 하는 존재로부터 나를 지켜야 하니까 말이다. 다만 가끔 B를 생각하면, 좀 미안하기는 하다. 안 그래도 그 애는 그 무렵 진로 때문에 힘이 많이 든 것 같았다. 나도 25살 무렵에는 정말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냈고 온갖 생각으로 맘이 괴로웠었던 기억이 난다. 30대가 되고 나서야, 사람들은 자신을 대접한 만큼만 남을 대접해 준다는 것을 온전히 깨달았다. 그래서 나의 태도를 좀 더 배려심 있게 고쳤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B가 그걸 얼른 깨닫기를 빈다. 사람들은 능력 있는 사람보다는 다정한 사람에게 더 끌린다는 진실 말이다.      


사람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괴테가 말했다. 어쩌면 B의 서툴고 힘든 시간들은 모두 그 애의 진심 어린 노력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B의 마음을, 나도 안다. 나도 그랬었다. 그리고 물론 다른 수많은 청춘들도 그럴 것이다. 잘하고 싶은데, 정말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될 때, 우리는 조바심이 나고 속상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게 된다. 아니면 나처럼 괴로워하며 아예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다. 청춘의 아픔에는 다양한 양상이 있겠지만 어쨌든 ‘나’와 ‘세상’의 균형점을 잃어버린다는 점은 같다.      


위대한 꿈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하다. 단기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B와, 다른 흔들리는 청춘들에게, 때로는 물처럼 흘러가야 할 때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힘을 빼고, 긴장을 풀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 그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여 너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아직도 마음으로는 B를 응원하고 있다. 그 애는 종종, 아주 현명한 말들을 하곤 했다. B는 B만의 균형점을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20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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