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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람 May 16. 2024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접속사

OOO 잘했어

완벽주의 때문에 그간 고민이 많았다. 우선 내가 겪었던 문제들을 솔직히 말해보면, 뭔가를 해내도 성취감이 거의 들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목표만큼 성취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양적으로 뭔가를 달성했다고 해도, 질적으로는 만족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결국 번아웃 비슷한 게 왔다. 번아웃은 다들 아시다시피 지쳐서 일할 의욕이 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나의 경우와는 좀 다를 수도 있다. 나는 중간까지는 제법(?) 잘하니까 말이다.      


내가 일하는 방식은 이렇다. 어떻게든 시작은 한다. 그리고 중간까지는 그런대로 잘 간다. 목표도 유지하고 동기도 유지하면서, 잘 실행한다. 그런데 일의 후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급속도로 에너지가 떨어진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면서 끈기가 부족하다고 했다. 아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나는 그 일이 완성되는 것이 두려웠던 거다. 완성이 되었는데도 질적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던 거다. 그래서 아예 완성하지 않으려 했던 거다. 그러면 그 일은 아직 미완성이니까. 내가 형편없이 일했다 하더라도, 아직 끝마치진 않았으니까 더 잘할 기회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습관 때문에 너무나 고생을 많이 했다. 모든 일이 마무리가 안 되었다. 스스로 문제점은 알고 있었지만 해결책을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처음엔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끈기가 없는 줄 알았다. 그래서 끈기를 기르려고 노력도 많이 해봤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원인이 그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과도하게 높은 기대와, 그것을 위해 나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결국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내 안의 완벽주의와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커졌던 것이다. 아마 대한민국에 이런 문제를 겪고 계시는 분들이 좀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나는 이 게으른 완벽주의를 이렇게 극복했다. “그래도 잘했어.”라고 반복해서 입으로 외우고 정말 ‘그래도 잘한 점’을 찾아냄으로써 말이다. 접속사 ‘그래도’의 힘은 크다. 그냥 “잘했어”는 정말 잘한 일만 잘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만약 내 기준보다 못했다고 느끼는데도 “잘했어”라고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래서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도중에 뭔가를 실수했고, 내 기준으로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더라도, “그래도 잘했어”는 뭔가 허용될 여지가 있다. ‘그래도’ 잘한 거니까. 완벽보다는 조금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한 점이 있다, 그런 뜻이니까. 내게 “잘했어”가 평범하고 어찌 보면 딱딱한 칭찬이라면, “그래도 잘했어”는 응원, 위로를 담은 좀 더 따스한 느낌이다.      


나는 최근에도 달력을 만들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현재 12장 중에 7장을 완성했다.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또다시 압박이 생겼다. 하기 싫다, 질린다, 다른 걸 먼저 할까, 이런 생각들을 했지만 알고 보면 그게 다 완벽주의의 술책이다. 마지막까지 잘 해낼 자신이 없으니까 회피할 생각부터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래도 잘했어”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내가 무려 7장이나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 한 달 동안 그림 7장이면 내 기준에서는 그래도 꽤 많이 그린 거다. 꾸준히, 포기할 생각하지 않고, 연속해서 동일한 테마로 7장을 그려낸 거다. 12장이란 내 기준에는 못 미쳤지만 “그래도 잘한” 거다. 결코 날 12장을 그리는 데 실패한 실패자로 치부할 수 없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달력에 들어갈 그림을 그릴 생각이 갑자기 솟구쳤다. 할 수 있다, 빨리 완성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진짜 오래간만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나를 잔인하게 몰아붙이고 조금의 칭찬도 주지 않았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칭찬에 굶주렸으면 이렇게 빨리 반응이 올까. 노예도 이런 노예가 없다. 나는 나를 완전히 착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러지 않으려 한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들은,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높은 기준과 엄격한 성과주의로 인해 마음을 다쳐 그렇게 되신 분들은, 계속해서 '그래도 잘했어'라고 말해보심이 어떠한지. 그러다보면 정말 자신이 '그래도 잘해온 점'을 찾게 되실 거고, 더 나아가 "이건 그래도를 붙일 필요가 없어. 잘했네. 정말 잘했네!"라고 외치게 되는 날이 오실 거다. 언어는 마음을 정의한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면서 슬퍼하지 말자. 남들이 당신을 깎아내릴 수도 있다. 부모나 윗사람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만큼은, 당신 자신만큼은 그러지 말자. 자신을 포근히 안아주자. '그래도'라는 접속사와 함께. 그래도 당신은 정말 잘 살고 있다.


2024.5.10

달력 8장. 이 글을 쓰고 한 장을 더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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