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아람 May 28. 2024

다양한 성공의 풍경들

당신의 꿈은 어떤 모습입니까?

옛날에 자기계발서를 열심히 보던 시절이 있었다. 책마다 나오는 말이 있었다. <성공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정의하라>. 음, 대체 무슨 말이지? 어쨌든 책에서 재정의하라니까 재정의해봤던 기억이 난다. 책 귀퉁이에 낙서로 끄적거렸다.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가 되고, 많은 돈과 명예를 얻고, 훌륭한 배우자를 얻고, 엄청 행복해지고, 뭐 그런 식이었다. 이런 것들만 얻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고,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삶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모든 걸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난 지금, <성공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정의하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삶은 잔인하다. 엄격한 등가교환만이 존재한다. 선택지가 두 개 있다면 안온한 마음으로 “둘 다 가질래!”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그랬다가는 두 개 다 놓치기 십상이다. 글을 쓰거나 TV를 보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만약 글을 쓰려면 TV 보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그럴진대, 큰일은 더하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성공을 자신만의 언어로 재정의하라는 말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성공했다고 느끼기 위해서 얻어야만 하는 것이 A인지, B인지? 삶의 모든 조건들을 다 가진다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언제나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하는 것은? 그런 것들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기가 무척 쉽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값나가는 것, 가치로운 것을 우리의 선택으로 결정하기가 무척 쉽다. 돈, 지위, 권력, 이런 것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한다. 그런 면에서 십 년 전에 내가 썼던 성공에 대한 재정의는 틀렸다. 최고/돈/명예 등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나열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성공을 재정의하려면 ‘최소단위’로 써야 한다. 최대단위로 쓰면 누군들 갖고 싶은 걸 다 쓰지 않겠는가. 내가 말하는 최소단위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이고 필수 불가결한 조건만을 최소한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성공에 대한 재정의는 “소중한 사람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살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많은 부와 명예도 권력도 지위도 그리 필수 불가결하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든 삶은 살아진다. 그리고 행복할 수도 있다. 돈이 많으면 무엇보다 편할 것이다.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복하려면 돈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만 벌면, 충분하다. 나의 생각은 그렇다.     


처음 이런 생각을 했을 때 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니, 사실 좀 부정했다. 처음에 “사실 내가 원하는 건 딱 이것뿐인데?”라고 생각했을 때는, 나 또한 각종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성공’이라는 틀에 갇혀 있었을 때였다.     


“성공이라고 정의하려면 돈을 수십억, 수백억 벌고 지위와 권력도 충분해야지! 나는 아직 젊으니까 꿈을 크게 가져야 해! 내겐 모든 가능성이 있잖아. 그리고 성공하든 실패하든 간에 시도는 해봐야지. 처음부터 이렇게 작은 꿈을 꾸는 것은 죄야!”     


라고 생각했다. 무조건 큰 꿈을 가져야 한다는 유명한 사람들의 말도 있지 않은가. 심지어 어떤 책을 보면 성공한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젊을 때 꿈을 열 배 더 크게 가졌어야 했다”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말을 접할 때마다 점점 더 헷갈렸고, 나의 ‘진짜’ 성공의 조건을 오히려 부인했었다.     

 

그러나 요새,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 묻고 있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나는 결론을 내렸다. 성공을 내가 도달하지 못하는 저 위에 두고, 엄청난 결과를 바라며 일에 매진하는 것도, 괜찮다. 그 사람에게 맞는 인생의 방식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참 작았다. 어떤 사람들 눈에는 나의 성공이 곧 실패로 보일 만큼 작았다. 하지만 동시에, 참 가벼웠다. 나는 이것이 충족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행복해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말하면, 최근에 읽은 어떤 책에서 사람은 권력과 자극, 안정 등 서로 추구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내용이 있었다. 정확히는 그 셋을 추구하는 비율이 각각 다르다고 했다. 권력을 가장 추구하는 사람은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에 집중하고, 자극을 가장 추구하는 사람은 새롭고 신선한 가능성으로 가득 찬 자극적인 삶을 원하며, 안정을 가장 추구하는 사람은 정신적인 평온함과 따스한 애정을 원한다고 했다. 안정형의 사람은 아무리 많은 돈을 갖고 높은 지위에 올라도, 주변에 믿고 애정을 나눌만한 사람이 없으면 불행할 것이다. 반면에 권력형의 사람은 아무리 인간관계가 좋아도 스스로 생각하는 만큼 충분히 성공해있지 않으면 괴로울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그게 우리가 성공을 재정의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과학적 근거에 따르면, 정말 사람마다 원하는 성공의 모습이 다 다르니 말이다.      


내 생각에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자기계발서를 쓸 만한 사람들은 거의 다 권력형일 듯하다. 그러니 그들은 책 속에서 더 큰 꿈을 꾸라고, 더 높은 자리에 앉으라고 우리를 종용한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를 동기부여한다. 그 사람들이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에겐 그러한 시각이 전적으로 옳다. 다만 그런 사람들‘만’ 있는 곳으로 세상이 인식되어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분명 세상엔 나처럼 안정형의 사람도 있고, 또 자극형인 사람도 있는데, 권력을 소유한 것만이 ‘성공’이라고 생각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내가 원하는 삶이 정말로 무엇인지 말이다. 그리고 세상의 시선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오직 스스로에게만 물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지, 나의 삶이 어떠한 모양새로 펼쳐지길 원하는지 말이다.   

   

삶은 그것을 살고 있는 자가 누구냐에 따라, 정복할 자를 기다리고 있는 험준한 눈 덮인 산이 될 수도 있고, 매혹과 눈부심으로 가득 찬 파티장이 될 수도 있고, 아침이슬 맺힌 평화로운 오솔길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표면적으로는 잘 알 수 없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항상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이 자신만의 삶의 이상을 찾으시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2024.5.28


이전 07화 '언젠가' 전성기가 올 거라는 말의 함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