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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람 May 31. 2024

인간의 대체불가능성에 관하여

티셔츠 한 벌로 느끼게 된 존재론적 우울

나는 어린 시절 놀이방을 다녔다. 거기서 친하게 지내던 어린 친구가 한 명 있었다. 편의상 그 애를 H라 하겠다. H는 길고 검은 머리에 새까만 눈이 예뻤던 아이로 기억한다. 우리는 같이 한글과 수학을 배우는 사이였기 때문에, 서로 샘도 내고, 약간의 질투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친구였지만 일종의 경쟁상대였다. 그러던 어느 날, H가 주스를 티셔츠에 실수로 엎질렀다.      


H는 어린아이답게, 끈적끈적하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해서 펑펑 울고 있었다. 얼른 다가온 놀이방 선생님께서 H의 옷을 갈아입히려고 하셨다. 그런데 H의 사물함과 가방에 여분의 티셔츠가 없었다. 놀이방 선생님께서는 난감해하셨다. 그런데 내 사물함에는 여분의 티셔츠가 있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그 티셔츠는 주황색 바탕에 흰 선으로 해바라기를 그린 티셔츠였다. 나는 그 티셔츠를 입으면 내가 참 예뻐 보였다. 정말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이었다. 놀이방 선생님께서 내게 그 티셔츠를 H에게 잠시 빌려주면 어떻겠느냐고 내게 물어보셨다.      


나는 바로 승낙했다. 놀이방 선생님께 “아람이는 참 착하다”라는 말이 듣고 싶었고, 또 한편으로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 말곤 아무도 그 티셔츠가 나처럼 잘 어울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강했다. 놀이방 선생님께선 내 동의를 얻고 나서 바로 H에게 그 티셔츠를 갈아입히셨다. 그리고 내 옷으로 갈아입은 H를 보고 나는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 티셔츠가, 내가 너무 좋아하는 그 티셔츠가 H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H의 흰 피부에 주황색 티셔츠가 너무너무 잘 어울렸다. 얼굴이 환하게 살았다. 그걸 아는지 H는 활짝 웃고 있었다. 사실 티셔츠를 갈아입어서 끈적이질 않으니까 좋아서 그런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어린 나는 그 순간 울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놀이방 선생님은 갑자기 내가 우니까 몹시 당황하셨다.   

   

“아람아, 왜 우니?”

“…….”

“아람이가 분명히 티셔츠 빌려줘도 된다고 했잖아?”     


나는 계속 아무 말도 없이 울면서 고개를 젓기만 했다. 한동안 나를 달래시려던 선생님께서는 결국 포기하고 나를 내버려 두셨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좀 황당하셨을 것이다. 분명 빌려줘도 된다고 해놓고 울기 시작하니 말이다. 하지만 나도 나만의 사정이 있었다. 나는 내 티셔츠가 H에게 잘 어울려서 조금 샘이 났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나는 그때 존재론적인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린애가 무슨 존재론적인 외로움이냐고 하시겠지만, 그런 어려운 단어를 몰랐을 뿐, 그때 내 가슴을 채우고 있던 건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그 티셔츠는 오로지 ‘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도 나만큼 그 옷이 잘 어울릴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H에게도 그 티셔츠는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로 인해 나는 이 세상에 온전히 ‘내 것’인 무언가는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티셔츠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차이를 전혀 감지하지 못할 것이다. 더 나가면, 내가 다른 사람으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그냥 그런 것들이 느껴지며 많이 슬펐다. 세상에 나 혼자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나는 한참 후에야 눈물을 그쳤다.      


꼬맹이치곤 꽤나 철학적이면서도 외로운 생각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명품이든 소중한 물건이든, 그 어떤 사물도 그 사람에게 온전히 속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죽을 때 그 모든 것을 놓고 갈 것이다. 또한 인간은 다 대체 가능한 면이 있다. 아무리 독보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 사람이 없으면 큰일 날 것 같지만, 없어도 지구는 다 돌아간다. 어찌보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삶은, 참으로 허무하고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 대체 불가능하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또한 그렇게 믿지 않으면 삶을 충만하게 살아갈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프로그래밍된 존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언제든 대체가 가능하면서도, 스스로가 유일무이하다고 믿으며 사는 유일한 생물. 


그러나 우리가 의미있다는 생각은 모두 우리 안에 심겨진 유전자의 장난이라고 할지라도, 아니면 우리보다 더 발달한 외계인이나 신이 우리에게 심어놓은 착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남겨진 답은 하나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조각인 현재를 소중하게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대체 가능성과 무의미함에 반박하는 유일한 해답일 것이다. 나는 살아있다고, 지금 이 순간을 충만하게 살아있다고 말이다.  


-2024.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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