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윤아 Jul 24. 2017

전업주부로 살아보니

'퇴사'라는 뽀샤시 필터

“퇴사가 진짜 좋긴 좋나 보다. 나 너 못 알아볼 뻔했어.”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칭찬을 늘어놓았다. 여자들의 대화가 서로에 대한 릴레이 칭찬으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칭찬에는 분명 일말의 진정성이 있었다. 입은 거짓말에 능숙해도 눈은 서툰 법이다. 까맣고 동그란 그녀의 동공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잔뜩 확장돼 있었다.  

 예뻐졌다는 말이 불러온 가벼운 흥분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자마자 실망을 거쳐 의심으로 바뀌었다. 아무리 구석구석 살펴도 달라진 게 없었다. 부스스한 머리, 문신이라도 한 듯 매일 똑같은 메이크업, ‘교복’이냐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매번 입는 외출복. 뭐 하나 회사 다닐 때보다 나아진 게 없었다. 오히려 나빠진 것만 눈에 띄었다. 숱한 야근에도 끄떡 않던 평정심 많던 피부에 꽤 큰 뾰루지가 두 개나 났다. 심지어 전날 잠까지 설쳐 푸석푸석, 붓기까지 했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변한 건 내가 아니라 그녀라는 가설이 차라리 더 설득력 있었다. 내가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을 정도로 그녀는 심하게 퇴사병을 앓고 있었다. 자신의 오랜 숙원을 먼저 실천한 나에 대한 부러움과 퇴사 자체에 대한 환상이 한 데 섞여 그녀의 홍채에 필터를 씌운 게 아닐까. 그것도 신봉선도 아이유로 만들 만큼 강력한 뽀샤시 필터를 말이다. 

퇴사가 내 인생을 뽀얗게 만들어줄까

 회사를 그만두고 ‘편해 보인다’ 거나 ‘얼굴이 폈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이런 칭찬 다음엔 어김없이 질문이 이어졌다. ‘퇴사하니까 행복하지? 살 것 같지?’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기대감으로 한껏 동그래진 그들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그렇다’고 답해 줘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많은 직장인의 꿈은 퇴사다. 회사 문만 박차고 나가면 그때부턴 예뻐지고, 날씬해지고, 행복해질 거라는 ‘퇴사 만능론’이 직장인 사이에 전염병처럼 퍼져있다. 퇴사가 모공 넓고 요철 많은 내 인생을 절로 뽀얗게 만들어 줄 거라고 믿는다.  

 물론 어느 정도는, 아니 일정 기간은 온 세상이 내 것 같을 때가 있다. 이른바 ‘퇴사 허니문’ 기간이다. 그동안 고생한 스스로에게 상을 준다며 여행을 떠나 난생처음 별 5개짜리 호텔에서 모히토도 들이키고, 알람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늘어지게 아침잠도 잔다. 오후 2~3시 손님 없는 한적한 시간 카페를 찾아 그간 못 읽었던 책도 읽는다. 회사를 다닐 때 누적됐던 결핍이 하나하나 해소된다. 행복은 결핍이 채워질 때 가장 손쉽게 온다. 이때는 참 행복하다. 

짧은 '퇴사 허니문’ 뒤 이어지는 퇴사 권태기

 그러나 결핍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허니문 기간도 어느덧 막을 내린다. 그때부턴 바로 권태기다. 손등만 스쳐도 떨렸던 연인이 세상 둘도 없는 원수가 되듯, 세상 반갑던 여유가 슬슬 지겨워진다. 아침 운동 다녀와서 저녁때까지 내 일과는 텅 비어있다. 늦잠도 하루 이틀, 여유도 하루 이틀이지 넘쳐흐르면 전혀 반갑지 않다.  

  바로 이때쯤 행복의 영원한 적, 불안이 슬슬 활동을 재개한다. 시간이 많으면 아무래도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닐까, 이대로 주부로 지내는 게 맞는 걸까, 지금이라도 다시 일을 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내 인생을 환하게 만들어 주리라 믿었던 퇴사라는 필터가 작동을 멈추면 불안이 한층 더 또렷하게 드러나고 만다. 사실 그녀를 만나기 전날이 꼭 그랬다. 힘들다고 만날 때마다 징징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버티고 있는 그녀를 보면 혹시나 내 선택을 후회하게 될까 봐 밤새도록 전전 긍긍했다. 안 나던  뾰루지가 두 개나 났던 것도, 재발한 불면증 때문에 잠을 설친 것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풍경이 달라보일 땐 멈춰야 한다.  인생의 지루했던 챕터 하나가 넘어가는 순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넋 놓고 기다린다고 행복이 올까

 그러다 우연히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라는 책을 만났다. 회사를 다닐 때는 그렇다 치자.  왜 주부로 사는 지금도 번뇌에서 벗어나질 못할까. 행복한 사람들은 대체 뭐하고 사는 걸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행복'을 키워드로 검색했더니 이 책이 걸려들었다. 타샤 튜더는 미국에서 동화 작가로 활동했던 할머니다. (지난 2008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의 그림책 보다 더 알려진 건 독특한 삶의 방식이었다. 30만 평이 넘는 정원을 ‘비밀의 화원’처럼 가꾸고, 고양이 개는 물론 종달새 심지어 쥐(!)까지 키우며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그녀. 바느질을 하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는 그녀는 미국에서 행복의 대명사처럼 여겨진다. 

 그런 그녀가 쓴 에세이를 읽고 있자니 절로 한 문장이 떠올랐다. '부지런해야 행복해진다.' 버몬트라는 시골에서 혼자 사는 삶은 누군가에겐 형벌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지독히 외롭고 무료할 테니. 그러나 그녀는 매일 충만한 행복을 누린다. 비결은 '쉬지 않고 뭔가를 하는'거다. 누워서 빈둥빈둥, 밥도 대충대충 먹는 게 아니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풍경과 교감하고, 직접 기른 유기농 먹거리로 근사하게 끼니를 챙긴다. '자 이제 나를 행복하게 해봐'라고 두 손 놓고 기다리지 않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행복을 손에 쥔다. 그제야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행복을 넉 놓고 기다리는 내가 보였다. 게으른 나는, 심지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도 게을렀던 것이다. 

 그 길로 첫 시도를 했다. 책을 쓰는 일이었다. 누구보다 치열했지만 자꾸 작아지기만 했던  나의 20대를 책을 내는 행위를 통해 마무리하고 싶었다. 전직 기자가 책을 내는 건 그닥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자신감이 바닥인 데다 출간에 문외한이던 나는 선뜻 발을 내딛지 못했다. 그러나 '뭐라도 해보자'기로 했다. 그때부터 책 쓰기에 관한 책을 다 찾아 읽고, 웬만한 책 쓰기 코칭 카페에 다 가입했다. 심지어 2시간에 3만 원짜리(전업주부에게 적은 금액은 아니다)‘책 쓰기 코칭’까지 들었다. 

  그날 별 영양가 없던 강의를 듣고 집에 가는데 도심 속 석양이 눈에 들어왔다. 강남의 빼곡한 빌딩 숲 사이로 다홍빛 노을이 천천히 퍼지고 있었다. 조급함으로 얼어붙었던 마음에 온기가 돌았다. 필터가 벗겨진 세상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지루했던 퇴사 권태기가 물러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전업주부로 살아보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