뻣뻣한 요가 강사도 필요하다
제 첫 책 '뽑히는 글쓰기'(스마트북스)가 출간됐습니다.
퇴사하고 넉 달 정도를 넋 놓고 보내다가 올 초에 '뭐라도 해보자' 싶어 다소 무모하게 도전을 시작했어요.
제 이름 뒤에 '○○일보'란 타이틀이 없을 때도, 순도 100%의 제 열정과 콘텐츠만으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까 제 자신을 시험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저는 브런치 작가 신청도 떨어질까 봐서 몇 번을 망설였을 만큼 위축된 상태였어요. 그런 제게 '출판사 투고'는 말하자면, 심각하게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가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서울 명동의 롯데백화점에 가는 것만큼이나 위험하게 느껴지는 일이었습니다. 거절당할까 봐 너무 두려워서 노트북 앞에서 손을 벌벌 떨었어요.
하지만 책 속에 한 구절에 힘을 얻어 마침내 '메일 보내기' 버튼을 눌렀습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러라고 만들어진 건 아니다.' 그날 마우스를 '딸깍' 하게 만든 그 용기가 지금 제 곁에 있는 이 분홍색 책으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20대는 온통 '뽑히는 글'을 쓰기 위한 사투였습니다. 학교 때 배우는 글쓰기는 참 빈약하잖아요.
근데 대학에 입학할 때, 동아리나 인턴에 지원할 때, 그리고 직장에 들어갈 때는 온통 글쓰기로 선발시험을 치르더라구요. 그래서 늘 찾아 헤맸어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어떤 사람의 강의를 들어야 하나, 어떤 사람의 글을 벤치마킹해야 하나. 그 숱한 방황 끝에 제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손에 쥐게 됐고, 꼭 나누고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처럼 오래 방황하다 탈진해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었어요.
아래의 글은 제 책 '뽑히는 글쓰기'의 프롤로그 부분입니다.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서 이렇게 올려요. 많이 팔리면 당연히 좋겠지만, 단 한 분에게라도 제 책이 정말 고마운 동아줄이 돼준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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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여러 학원을 전전했다. 나에게 맞는 요가 강사를 만나기 위해서. 요가를 좋아하지만 아무리 너그럽게 봐줘도 결코 잘한다고 볼 수는 없다. 태생적으로 뻣뻣한 몸뚱이 때문이다. 표정은 달라이 라마지만 몸은 막대기. 요가하는 내 모습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한 말이 없다.
좋은 스승을 만나면 달라질까. 괜한 스승 탓을 하며 여러 강사의 손을 거쳤다. 이를 통해 나만의 법칙 하나를 도출했다.
‘나에겐 뻣뻣한 요가 강사가 필요하다.’
유연한 강사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내 다리가 양옆으로 더 활짝 벌어지지 않는지, 왜 내 상체가 좀 더 빈틈없이 하체 위에 포개지지 않는지 말이다. 발레나 무용으로 다져져 평생 유연함을 잃지 않았던 요가 강사는 초반엔 내 엉성한 자세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고, 이윽고 내 노력을 탓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손을 놔버렸다.
스승 K는 달랐다.
“나도 30년 동안 매일 해서 이 정도지, 처음엔 회원님보다 더 뻣뻣했어요.”
그녀는 뻣뻣한 이들을 위해 보다 구체적인 지침을 내렸다. 손가락에 힘을 주라는 모호한 주문 대신 엄지와 검지로 매트를 밀어 내라고 말했다. 몸이 유연하지 않아 아사나(Asana·坐法)를 정확하게 구현하지 못하는 수강생을 위해 자신만의 단계별 수련법을 만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워낙 유연해 별 어려움 없이 아사나를 수행해 온 강사들에게서는 나오지 않던 팁이었다.
책을 쓰기까지 많이 고민했다. 나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뭐라고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쓰나. 내게 자격이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다 이내 결심했다. 글쓰기에도 뻣뻣한 강사가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유연한 요가 강사는 완벽한 동작을 선보여 수강생들의 수련을 돕는다. 대신 뻣뻣한 요가 강사는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는 이들을 위한 구체적인 수행법을 전해줄 수 있다.
글쓰기 훈련도 마찬가지다. 글재주를 타고난 작가의 글은 그 자체로 훌륭한 교과서가 되지만, 재능은커녕 ‘글쓰기 포비아’를 앓았을 정도로 글쓰기를 두려워하던 사람이 시행착오 끝에 건져 올린 노하우는 글쓰기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매뉴얼이 될 수 있다. 교과서도 필요하지만 매뉴얼도 소중하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기 전까지 자발적으로 읽은 책이라곤 자기계발서 3권이 전부였다. 일기는커녕 연애편지도 안 썼고, 무진장 애를 써도 대학 글쓰기 강의에선 B+ 이상을 받지 못했다.
글쓰기는 언제나 내 아킬레스건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나는 자꾸만 기자라는 직업에 끌렸고,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해선 아픈 아킬레스건을 부여잡고 뛰어야 했다. 그 고통스러웠던 레이스를 통해 손에 쥔 나만의 요령을 이 책에 꾹꾹 눌러 담았다.
언론사 입사시험은 다양한 글쓰기 시험 가운데 최고 난이도를 자랑한다. 암기했던 지식을 글을 매개로 풀어내는 게 주를 이루는 사·공기업의 논술시험과 달리, 언론사 시험은 삶과 사회를 보는 글쓴이만의 고유한 관점까지 담아내도록 요구한다. 2차 필기시험 통과자는 응시자의 대략 5%. 상당히 수준 높은 글을 선보여야 면접관 얼굴이라도 볼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 언론사 시험에 머니투데이와 주간지A, 조선일보까지 총 세 차례 최종 합격했다는 사실은 내가 시험용 글쓰기 훈련만큼은 제대로 했다는 나조차도 부정하기 어려운 증거가 됐다.
뻣뻣한 요가 강사는 고민을 거치지 않고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구체적인 팁을 줄 때 그 가치가 증명된다. 글재주 없는 글쓰기 강사도 그럴 것이다. 글쓰기를 위해 내가 읽었던 책들, 들었던 강의들, 고민했던 시간들을 추려 가장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팁만을 모았다.
무엇보다 ‘단문으로 쓴다’, ‘주어와 술어를 일치시킨다’ 같이 뻔한 조언만 늘어놓은 글쓰기 실용서에 아쉬움을 느꼈던 분들을 또 한 번 배신하지 말자는 초심을 놓지 않고 썼다. 구제불능 ‘글치’였던 나를 구해줬던 이 시험용 글쓰기 매뉴얼을 통해 여러분의 글쓰기가 한 뼘이라도 더 유연해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