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윤아 Aug 03. 2017

전업주부로 살아보니

내 꿈은 내것만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아빠는 늘 한 걸음 뒤에 있었다. 대학 입학이나 취업 같은 굵직한 성취의 순간마다 나는 엄마와 부둥켜 안고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한 참을 충분히 기뻐하고 나면 아빠는 그제서야 '수고했다'는 짤막한 인사말을 건넸다. 철든 남자가 가장 버거워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라는 점을 나는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아빠가 겉으로만 저러지, 맘속으론 무척 기뻐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요즘 아빠를 보면 아닌 것 같다. 아빠가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전의 그 무덤덤함은 내가 이룬 성과가 그저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지난 주말 친정에 갔더니 최근 출간된 내 책 '뽑히는 글쓰기'가 작은 방에 무덤처럼 쌓여있었다. 자그마치 100권이었다. 저 책을 다 어쩌려고 저렇게나 많이 샀을까. "거래처 사장님들하고, 아빠 친구들하고 줄 데는 많으니까 걱정하지말고 빨리 사인이나 해줘!" 고마움과 미안함, (책 처분에 대한)막막함이 마음 속에서 회오리치더니 뜻밖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나 같은 초짜가 사인은 무슨 사인이야! 저거 다 어떡할거야!" 방의 절반을 뒤덮고 있는 책 더미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갑갑했다. 결국 단 한권에도 사인하지 않은 채 서둘러 집을 나섰다. 

 생각해보면 이상하긴 했다. 손 떨리는 투고 끝에 내 원고를 책으로 내주겠다는 출판사가 하나 둘 나타났을 때 가장 기뻐한 사람은 남편도, 엄마도 아닌 아빠였다. '눈이 오니 좋은 소식이 왔네, 축하한다. 아빠가 한 턱 낼게.' 그날 받은 문자 메시지가 아직도 선명하다. 책의 진행 상황을 꾸준히 궁금해하는 사람도, 민망할만큼 자랑해 주는 사람도 역시 아빠였다. 한 번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이웃 앞에서 '책은 언제 나오냐'고 물어 나를 민망하게 만들었고, 양고기 집에서 서빙해주시는 이모님에게까지 '얘가 작가'라고 자랑해 고개를 못들게 했다. 가족끼리 있을 땐 아무말 안하다가도 꼭 옆에 누군가 있으면 책의 근황을 묻곤 했다. 그게 아빠식 자랑법이자 홍보법이었다. 늘 한 걸음 뒤에 있던 아빠였지만 내 책에 관해서만큼은 가장 발 빨랐다. 

 아빠의 꿈이 작가였던 게 아닐까. 평소같지 않은 아빠의 반응을 곱씹어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주 터무니 없는 시나리오도 아니었다. 자라면서 본 아빠는 항상 뭔가를 쓰고 있었다. 거실 베란다에 놓은 앉은뱅이 책상에서, 온갖 약통과 과일들로 너저분한 부엌의 식탁에서 아빠는 읽고 썼다. 삼남매가 쓰다 만 음악이나 한문 공책, 버리려고 내 놓은 이면지가 아빠의 단골 노트가 됐다. 거기엔 '하면 된다' 계열의 명언이나, 신문에서 인상깊게 읽은 글귀들이 적혔다. 아빠는 '버스비를 아껴 책을 사려고 하루에 두 시간씩을 걸어서 통학했'던 청년과 '삼남매를 데리고 주말마다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던' 중년을 지나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끄적이는' 노년에 접어 들었다. 그렇게 평생 글 곁을 배회했지만, 정작 가장 많은 시간을 쓴 건 글자가 아니라 숫자였다. 건설업에 종사했던 아빠는 평생 도면과 계산기와 씨름했다. 그러니까 글은 아빠의 도피처이자 로망, 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내 퇴사를 가장 아쉬워했던 사람도 아빠였다. 몇 차례 만류하다 '신랑과 상의해서 결정하라'며 일찌감치 백기를 들어버린 엄마와 달리, 아빠는 만날 때마다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신문사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딸이 얼마나 괴로운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버티라고만 말하는 아빠가 많이 야속했다. 나라고 그 고생하며 들어간 회사를 나오는 일이 쉬웠을까. 나라고 강경희(아빠의 고정픽이었다) 선배 같은 여성 언론인이 되겠다는 꿈을 내려놓는 일이 아프지 않을까. 나 자신에 대한 실망도 감당이 안돼 휘청거리고 있는데, 거기에 부모의 실망까지 얹어주는 아빠가 참 너무하다고 느꼈다. 스무살 넘어서도 여러번 함께 여행을 다닐만큼 살가운 딸이었지만, 퇴사 후 한 동안 아빠에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빠의 꿈이 작가였다면 필사적기까지 했던 만류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어쩌면 아빠는 내 꿈 위에 아빠의 꿈까지 슬며시 올려 두고서, 내가 '우리의' 꿈을 이뤄주길 노심초사 바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부담을 느낄까 겉으로 티내진 않았지만, 속으론 나보다 내 꿈에 더 간절해 했을지도. 그래서 내 포기를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고, 내 재기(再起)에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던 게 아닐까. 그제야 내가 전업주부가 되면서 내려 놓은 게 내 꿈 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내 꿈 위에 얹혀진 아빠의 꿈까지 함께 내려 놓았던 것이다.  

 "줄 데 많다"고 내 앞에서 큰소리를 뻥뻥 쳤지만, 아빠는 결국 형부에게 5권을 떠안겼다. 거의 반강제적이었다고 한다. 책 100권이면 거의 100만원이다. 돈 몇 천원 아끼겠다고 커피숍 대신 롯데리아를 가고, 김밥천국에서도 맛 없는 원조김밥만 시키는 짠돌이 아빠에게 이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아빠의 유래 없는 사재기에서 나는 아빠의 마음을 읽었다. 사회에서 한 껏 상처 받고 집으로 간 딸이 다시 일어서 줬으면 하는 간절함, 그 재기의 발판이 아빠가 그토록 사랑했던 '책'이라는 데서 오는 뿌듯함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쓴다. 내 어깨에 올라 앉은 아빠의 꿈이 기분 좋게 무겁다.   




작가의 이전글 뽑히는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