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멘붕 매뉴얼도 소용없을 때
저도 몰랐습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요가를 전도하고 다녔던 제가 이렇게 쉽게 요가를 배신할 줄은. 바람피운 상대는 '발레'입니다. 맞습니다. 얼굴 작고 두상 예쁘고 목 길고 유연한 여자들의 특권인 그 발레를 감히 뻣뻣함의 아이콘인 제가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됐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요기니인데 그럭저럭 잘 따라 하지 않을까 내심 자신감이 있었는데, 역시나 반에서 제일 뻣뻣합니다. 몸이 안 따라주니 애먼 어깨에만 힘을 줘 승모근이 잔뜩 성나 있습니다. 이곳에도 근육이 있었구나 싶을 만큼 정말 다양한 부위가 몹시 아픕니다. 특히 허벅지 옆쪽 근육이 심각합니다. 요가할 땐 허벅지 앞쪽 근육을 자주 썼는데, 발레는 옆쪽 근육을 써서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이 꽤 있습니다. 새로운 운동을 하면 새로운 부위가 아픈 건 어쩌면 당연한 건데도 새삼 놀라고 있습니다. 역시 모든 새로움은 고통을 수반하나 봐요.
오랜만에 브런치 구독자 여러분께 인사를 건넵니다. 마지막 글을 9월 20일에 업로드했으니 거의 두 달 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어요. 열흘을 멀다 하고 글을 올렸는데 두 달이나 뜸했더니 저도 너무 어색해서, 같이 어색해 보고 싶어서(아무 말 대잔치ㅠ) 어색함의 상징인 경어체로 근황을 전합니다. ^^
요가도 배신하고, 브런치도 끊었던 이유, 궁금하셨죠? 저는 그동안 지독한 '자존감 초기화 현상'을 겪었답니다.
두 달 전 마치 득도라도 한 것처럼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겠어!'로 수렴되는 글들을 연이어 올려두고 그게 무슨 소리냐 싶으실 거예요. 그 글을 올리고선 저는 또 한 차례 좌절을 겪었어요. 아주 좋은 기회를 잡지 못했거든요. 드디어 다시 조직에서 일하고 싶고,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잔뜩 기대감에 부풀었는데 누군가 제 기대감 풍선을 콕하고 바늘로 찔러버렸습니다. 마치 세상이 그렇게 쉽겠냐며 저를 비웃는 것 같았어요.
좌절감은 고무처럼 질겼어요. 작가 공지영의 책을 보면 '모든 가능성의 문이 닫힌 것 같은 날'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제 기분이 꼭 그랬어요. 커리어 단절이 문제인 건가, 애 없는 기혼 여성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문제인 걸까, 두 번이나 사표를 쓴 전력 때문인 건가. 이유를 찾으려는 오만가지 생각은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됐습니다. '이제 너는 경쟁력이 없어.' 이 말은 제가 항공사 마일리지 쌓듯 인내심을 가지고 차곡차곡 쌓아두던 자존감이 완전히 초기화됐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했지요.
'멘붕 매뉴얼'을 즉시 가동했어요. 요가를 하고, 독서를 한다. 그리고 글을 쓴다. 그런데 겨우 힘을 내서 요가 매트를 폈는데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아사나를 수련하면서도 인상 팍 쓰고 왜 거절당한 건지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요가만큼 오래 좋아했던, 마음이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던 독서도 싫었어요. 글자가 눈 앞에서 그냥 흩어지다 못해, 종국에는 작가 욕을 하고 있더라고요. 드~럽게 어렵게 썼다면서요. 일상을 흘려보내니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어도 도무지 쓸 말이 없더라고요.
시간은 야속하리만치 빨리도 흘러가는데 의욕은 안 생기고. 그렇게 지내다가 며칠 전 만난 한 언니에게 전도를 당했어요. 발레로 넘어오라고요. 무지 재밌다고요. 사실 여자들 대부분은 비운의 발레리나잖아요. 저도 예닐곱 살 때 집에서 발레 한답시고 막 오른쪽 다리 잡아서 올리고 난리 부르스를 췄거든요. 근데 발레가 한 두 푼도 아니고, 저는 얼굴도 크고 두상도 90도로 깎아지른 절벽이고, 유연하지도 않아서 학원 한 번 못가보고 포기했었어요. 근데도 제 안엔 상처받은 발레리나가 남아 있는지, 요가할 때도 중지를 살짝 아래로 떨어뜨리는 '발레 손가락'을 하고 있더라고요. 내 몸으로 무언가 아름다운 걸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런 연유로 '나이 먹고 피아노 배우기'보다 어렵다는 '나이 먹고 발레 배우기'에 도전을 하게 됐습니다. (마침 요가원보다 싼 값에 발레를 배울 수 있는 학원이 있어서 크게 부담 안 갖고 등록을 했어요.)
새로운 걸 하려니까 지독한 걱정병이 도저서 나만 못 따라 하는 건 아닐까, 나만 요가복 입고 하는 건 아닐까, 다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다 잠도 못잤어요. 그렇게 걱정병사에게 포위된 채 발레학원을 가려고 집을 나서는 순간, 그러니까 거진 두 달 만에 아침 하늘을 보고 아침 공기를 마시는 순간, 갑자기 제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떻게든 이겨내보려고 애를 쓰고 있구나. 아직 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고 그걸 시도해 낼 에너지가가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봄바람처럼 느닷없지만 훈훈하게 불어 왔어요.
발레 효과는 엉뚱한 곳에서 먼저 나타나서, 정말 오랜만에 도서관도 가고 이렇게 다시 글도 쓰고 있어요. 아무래도 발레가 뿌연 비관만 가득했던 제 마음 속을 환기 시킨 것 같아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예 없었을 때보다 살짝 믿음이 생겼는데 허무하게 무너질 때 오히려 자존감은 더 빠르게 증발하는 것 같아요. 줬다 뺐으면 더 서운한 이치랄까요? 그럴 땐 기존에 나를 일으켰던 소중한 것들마저 밉더라고요. 그래서 요가와 책이 싫증났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럴 때는 완전 새로운 차원의 시도를 하는 게 도움이 되더라고요. 다르지만 높지 않은, 그러니까 '안전한 시도'요.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요리를 해본다든지, 제가 발레를 시작했듯 정들었던 취미를 떠나 살짝 '취미 외도'를 해보는 것이지요. 실패할 확률이 낮고, 실패해도 잃을 게 없는 안전한 시도를 통해 내게 아직 하고픈 일이 있고, 퍼져버린 내 멱살을 잡고 일으켜 기어코 그 일을 하러 가게 만드는 에너지까지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면 '아직 바닥은 아니며, 내겐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한 꼬집의 희망 알갱이가 남더라고요. 자존감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던 바로 그 자리예요.
새로운 운동은 근육통을 동반하지만, 통증 없인 그곳에 그 근육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잖아요. 새로운 경험이 자존감을 지탱해 줄 제3의 근육을 찾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저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공유하고 싶어, 이렇게 길게 주절 거렸습니다. 곧, 다시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