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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아 Nov 16. 2018

우리에겐 부끄러워할 시간이 없다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이별에 두려울 때

 권위와 친밀함은 공존할 수 있는가. 병동에서 외할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그 생각을 했어요. 병원 밖에서 만난 외할아버지는 다가가기 쉬운 분은 아니셨어요. '정통 가부장제'를 성실히 받아들인 가장이셨거든요. '여봐, 물 가져와.' 아내와 딸, 며느리에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늘 이것저것 지시하셨고, 손녀인 제게도 매번 사과를 깎게 하셨어요. 시집 잘 가려면 일찌감치 이런 걸 배워둬야 한다면서요. 저는 '타도 가부장제'를 외치는 나름 페미니스트이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가부장제를 종교처럼 믿고 따르던 분이셨지만, 그래도 저는 할아버지가 좋았어요. 저희 가족이 올라간다고 전화를 드리면 전화를 끊고부터 저희가 주차장에 차를 댈 때까지 아파트 복도에 서서 하염없이 주차장만 바라보시던 그런 분이셨거든요. 아마도 당신은 억누르고 억눌렀을 그 애정을 저는 어렴풋이 느꼈어요. 가부장 특유의 그 절제된 애정에 어떻게 반응하고 보답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잘 몰랐을 뿐.

 할아버지가 입원하시고 돌아가시기까지 걸렸던 3년은 그 방법을 배웠던 시간이었어요. 처음에 문병을 갔을 땐 고민했어요. 손을 잡아드려도 되나. 건강하실 땐 한 번도 잡아드린 적 없었는데. 좀 민망한데. 그래서 그냥 말만 하고 병실을 나왔어요. "할아버지, 많이 좋아지셨대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그런 하나마나한 말을요.

 갈 때마다 할아버지는 달라졌어요. 나쁜 방향으로요. 20년 넘게 매일 산을 타고 배드민턴 라켓을 휘두르며 만들었던 그 많던 근육이 정말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어요. 설에 갔을 땐 분명 앉아서 식사를 하셨는데, 추석에 가면 침대에 거의 누운 채로 드셨고, 이듬해 설에는 식사가 불가능해 영양제를 넣기 위한 콧줄을 끼고 있는 식이었죠. 그러는 동안 폐렴이 몇 번 지나갔고요.

 '시간이 많지 않겠구나.' 처음 그 직감이 저를 스쳐갔던 날, 저는 덥석 할아버지의 두툼한 손을 잡고 문질문질 마사지를 했어요. 손이 어렵지 그다음은 쉽더라고요. 발도 꾹꾹, 어깨와 팔도 조물조물, 이마도 쓰담쓰담. 병원 밖에서는 단 한 번도 만지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손을, 발을, 이마를 그렇게 처음 만져봤네요. 건네는 말도 달라졌어요. 점점 더 마음 깊은 곳의 얘기를 길어 올렸죠. "할아버지 윤아 왔어요"에서 "할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윤아 왔어요" 로요. '보고 싶었어요'라는 여섯 글자를 추가하는데 목소리가 떨리더라고요. 보고 싶었다는 말, 너무 어색하고 낯간지럽고 부끄러워서. 하지만 이 역시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엔 쉽더라고요. "할아버지 저 어렸을 때 많이 놀아주셔서 고마웠어요. 사느라 너무 고생하셨죠.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못해서 죄송했어요. 할아버지 사랑해요." 그렇게 제 마음속 바닥에 있던 이야기까지 모두 꺼내놓은 날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어요.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한 달이 지났어요. 아직도 많이 그립죠. 슬프고요. 그런데 괴롭게 슬프지는 않아요. 비유하자면, 파도치는 바다의 슬픔이 아니라 고요한 호수의 슬픔이에요. 그 고요함의 이유는 뭘까 생각해봤어요. 이런 답이 나오데요.

내가 부끄러움을 참아내고 건넸던 그 말들이 제게 위안을 주고 있는 거라고.

어색하고 부끄럽고 낯간지러워서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시간에 쫓겨 겨우 했던 바로 그 말과 행동들이 황망한 제 마음에 한 줄기 위안이 되어주고 있더라고요. 안도감이겠죠. 내 고마움과 애정을 전달했다는데서 나오는 다행스런 마음. 당신이 사랑받는 가장이었음을 마지막으로 상기시키고 떠나보냈다는데서 나오는 일종의 뿌듯함. 그런데 이런 감정이 타인에게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저게 더 위안이 됐어요. 할아버지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드리고 싶어 용기 내 건넸던 그 말이 정작 위로한 건 제 자신이더라고요.

 사랑하는 이의 상실을 겪고 나면 시간이 다른 감각으로 다가와요. '나중'을 불신하고 오직 '지금'만 신뢰하게 되죠. 꼭지만 돌리면 언제고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 같던 시간도 느닷없이 단수될 수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조급해져요. 사랑을 전할 기회가 더 이상 없을까 봐요.

 그 조급함이 저를 더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하는 요즘이에요. "왜, 무슨 일이야?" 라며 퉁명스럽게 받던 아빠의 전화를  "응 아빠, 잘 지냈어?"라고 받아요. "엄마 아빠가 장수하는 게 내 새로운 목표야. 우리 진짜 좋은 추억 많이 만들면서 살자"같은 오글거리는 카톡도 5초만 주저하고 보내고요. 심지어 손잡기도 어색했던 아빠를 안아줄 때도 있어요. 당연히 부끄럽죠. 그렇지만 이제는 알아요.

우리는 부끄러움이라는 강을 건넜을 때야 비로소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다는 걸. 부끄럽다고 망설이기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도.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도 아닌데 갑자기 내 깊은 애정을 표현하는 일 부끄럽잖아요. 어색하고, 창피하고, '진지충' 소리 들을 것 같고. 그런데 제 삶을 복기해보면 저를 진짜로 일으켰던 말들을 모두 부끄러움을 건너온 것들 뿐이더라고요. 출근 첫날 받았던 '출발을 응원한다'던 아빠의 편지, 모의고사 망친 다음 날 들었던 '윤아 파이팅!'이라는 엄마의 외침. 차마 말로는 못하겠어서 새벽같이 일어나 편지를 써준 아빠도, 얼굴 보고는 용기가 안 나 베란다에서 창을 열고 외친 엄마도, 제게 닿으려고 엄청난 용기를 냈겠더라고요. 그런 기억이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저를 일으켜 세워요.

 이번엔  좀 망설였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고 내밀한 속마음인제 이렇게 공개적인 공간에 드러내는 게 부끄러워서요. 하지만 여러분께 꼭 전하고 싶어 용기를 냈네요. 제 마음이 가닿았길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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