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의 배신(下)
막 직업의 세계에 발을 디디려하는 스물 다섯 나에게 그의 '직업론'은 김빠지는 말이었다. 일을 통해 성숙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는 '적당히' 해도 잘 하는 일에서 어떤 성장을 기대 할 수 있을까 의심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이어서 일종의 '낭만주의' 가 있었던 것 같다. 일에서 겪는 희노애락이 내 인생의 깊이와 풍미를 더해줄 거란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내게 80%란 수치는 권태와 정체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능력의 80%는 커녕 120~130%를 쏟아부어도 잘 할 수 없는 일을 수년간 하고 보니 탁 선생님의 직업론은 '인생의 진리'에 가까웠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직업에서 매일 실패를 맛본다면, 그것도 그냥 실패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맛보는 농도 진한 TOP급 실패라면, 그 사람은 멀쩡할 수가 없다. 일에서의 실패가 순식간에 일상까지 번져 나가기 때문이다.
상사에게 잔뜩 혼나고 집에 돌아와 마트에서 산 양념된 제육볶음을 뒤적일 때, 쌈 채소를 씻을 때, 그렇게 후다닥 차린 저녁을 먹을 때, 나는 자주 남편이 아닌 내 안에 남아 있는 상사의 독설과 마주 앉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 오래 재워져 필요 이상으로 달콤해진 고기를 씹으면서 맘 속으로는 낮에 못한 변명과 자책을 번갈아 했다. 단순히 일에 재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쉽게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기도 했다.
더 이상 재능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하면 대충해도 그럭저럭 잘해낼 수 있을까 고개를 돌려봤다. 내 능력의 절반만 써도 잘 할 수 있는 단 한가지 일이 눈에 들어왔다. 살림이었다. 아이 없이 부부만 사는 집의 살림은 그리 난이도가 높지 않았다. 특별한 기술이나 요령 없어도 부지런하기만 하면 거의 빈틈 없이 해낼 수 있었고, 실패 해봤자 요리를 살짝 태우거나 니트가 줄어드는 정도였다. 실패에 노이로제가 걸린 나는 이런 진입장벽이 낮은 일이 절실했다. 무엇보다 살림은 내게 상처를 줄 수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120% 최선을 다할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사표를 내고,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 한 선배와 짧게 인사를 나눴다. 한때 내 롤 모델이었던 그에게 만큼은 꾸며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재능 없는 일을 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담담하게 털어 놨다. 그는 토끼눈을 하고 반문했다. "아니, 누군들 재능있니? 그리고, 네가 재능이 없으면 누가 재능이 있겠니?"
그 말을 듣는데, 어쩌면 먼저 배신을 한 건 재능이 아니라 내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있던 재능이 갑자기 사라져 나를 곤경에 빠트린 게 아니라, 한 줌의 재능이라도 전적으로 지지해줬던 내 마음이 먼저 식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재능이란,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는 마음까지 포괄하는 개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 시절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나를 벅차오르게 했던 회사를 등졌다. 지독했던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