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자동차 전시회는 유명하다. 전 세계의 자동차 업체들 뿐 아니라 자동차 부품 업체들같은 자동차 관련 업체들이 모이는 곳이다.
나의 유럽 여행의 메인은 아마도 프랑크푸르트의 자동차 전시회 방문이었을 것이다. 전시회는 그냥 구경다니는것만으로 많이 지친다. 나는 2박 3일동안 전시회장을 돌아다녔다. 회사 팜플렛도 나눠주고 소개도 하면서..
하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없었다.
가장 기억나는 건, 내가 프랑크푸르트에 있었을때 바로 911 테러가 일어났었다. 다들 어수선했고, 나는 밤에 일정을 마치고 펍에 혼자 갔었는데(나는 펍에 혼자 잘 다닌다. 혼자 출장가면 꼭 펍에가서 그 나라의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한다), 그때 미국 파일럿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몇일째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쨌던 뒤숭숭하던 해에 독일에 있었고, 그때를 기점으로 공항의 보안은 더 빡세졌다. 영국 공항 검색대에서는 몸을 마구 더듬었을 정도니까...
프랑크푸르트가 독일의 전부라고 생각하였다. 괴테네집은 지도를 볼 줄 몰라 가지 못했고, 뢰머 광장(?) 그곳은 짧게 다녀왔다. 프랑크푸르트는 삭막한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유람선도 탔는데, 아름답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몇년 후에 독일에 장기 출장을 왔을 때, 독일 몇 몇 곳을 돌아다녀 보았는데, 독일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라는걸 그때 첨을 알았다.
아무튼, 프랑크푸르트의 일정은 전시회로 마무리지었다.
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향했다. 베를린은 동독과 서독의 장벽이 있었던 역사적인 장소가 아닌가? 그래서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베를린 여행은 회사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관광으로 가는 일정이었기에 비싼 호텔료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예스가 예약해 준 호텔로가서 호텔 예약을 취소한 후 가까운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여 어느 광장에 앉아있었다. (머리는 풀고, 나막신같은 신발을 신고, 아주 지친 모습으로....)
그런데 저쪽에서 누가봐도 한국여학생 둘이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얼른 다가가서 "저기요.." 하고 말을 건넸는데, 둘 다 너무 화들짝 놀랐다. 나중에 들어보니, 중국여자가 와서 말거는 데 한국말을 해서 놀랐다며.. ㅎㅎㅎ
나는 그 두명의 한국 여학생들에게 가까운곳에 싼 숙소가 어디있냐고 물었는데, 그 중에 한명이
"저희 집에 오세요!" 라고 한다.
'응???' 나는 정말 의아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지금 우체국에 가고 있는 길인데, 우체국에서 물건을 찾고 이리로 돌아올 예정이니 한 시간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정말 그래도 되냐고 몇 번 물어봤고, 제안을 했던 여학생 옆의 다른 여학생은 자신의 친구를 깜짝 놀란 눈빛으로 말리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한국 사람이 그리웠고, 한국말이 그리웠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지금의 그녀라면 그런 제안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렇게 말해 준 그녀가 정말 감사했고, 1시간을 그 광장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정말 돌아왔다!
그래서 같이 간 그녀의 자취방. 그녀는 음악하는 독일 유학생이었고, 나보다 한살이 어렸으며, 아직 베를린에 온지 얼마 안된 독일 신참내기였다. 우리는 신기하게도 금새 친해져서 엄청난 연애사를 함께 쏟아냈다.
그녀가 학교를 간 동안 나는 한창 공사중인 추적추적 비내리는 베를린을 돌아다녔다. (독일은 역시 나한테 맞지 않나..라고 생각했던 순간들..)
저녁에 그녀의 집에 다시 돌아갔을 때, 그녀는 나에게 정말 정말 맛있는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베를린 필하모닉의 콘서트도 같이 가고, 그녀가 자주 간다는 펍도 가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2박 3일간 같이 있었는데, 오래된 친구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음악회를 마치고
일정을 마치고 덴마크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김밥을 싸주었는데, 음식솜씨가 너무 좋기도 했지만, 그런 감사한 마음을 어디서 경험할 수 있을까 하여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감사한다.
우리는 가끔씩 연락을 주고 받았고 (자주는 아니고 생사만 확인), 그로부터 약 8년? 이 지난 시기에 폴란드 출장 중에, 베를린을 방문해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건축하는 한국남자분과 결혼을 해서 베를린에 살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양한 음악회 활동을 했고, 나는 두 번 정도 그녀의 연주회에 방문했었다. (우아한 그녀..)
나도 아이를 낳고, 그녀도 아이를 낳았다.
내가 얼마전 해외 여행 에세이를 시작하면서,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사진위에 그림을 그리고 카톡으로 보내주었는데 바로 전화가 왔다. 이야기하다보니 직장근무지와 아주 가까운곳에 살고 있었다. 얼른 약속을 잡고 그녀를 방문했는데, 그녀는 여전히 따뜻하다.
아이들 둘도, 처음 보자마자 서로를 너무 좋아했다. 그녀와 나는 그 당시를 다시 떠올리며, 우리가 20년 전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그렇게 집으로 오라고 하고, 집으로 오라고 해서 진짜 가고 그럴 수 있을까? 라며 웃었다.
그녀도 그녀의 위치에서, 나도 나의 위치에서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또 다시 10년이 지나면, 어떤 이야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